상형문자 해석과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가운데 점이 있는 동그라미는 태양이고, 역사적 맥락에서 이것은 권력을 상징하고…"
이집트의 상형문자 (출처: pixabay)이런 식으로 예술 역사(Art History) 교수님은 이집트 시대 파라오 비석에 있는 상형문자 몇 개만을 가르쳐 주고 해석을 하시더니 수업 말미에 다소 당황스런 과제를 내주었다.
“다음 시간까지 여러분의 과제는 옆 동네에 있는 박물관에 가서 아무 비석이나 찾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해 오시는 것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당시 인터넷에 상형문자 번역기는 없었으니, 별 수 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박물관 구석에 앉아 상형문자가 가득한 비석 하나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잠시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세계로 데려가 여행하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있다.
파라오를 태양왕이라 했으니, 태양은 권력을 상징하고, 지팡이는 도움을 주는 도구이니 왕의 신하가 아니었을까….등등 하나의 상상이 또 다른 상상으로 이끄는 것을 거듭하다 결국 어이없는 소설 한편을 써서 과제를 제출했다.
과제 리뷰를 받고 비석의 내용을 다시 해석하게 되었는데, 제출한 내용과는 매우 달랐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스스로의 상상과 논리로 해석을 이끌어낸 과정에서 좋은 평가를 주었다.
상형문자 해석 과제처럼 경영학의 학습방법 중에도 상상과 논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학습 방법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라는 것이 있다. 케이스 스터디는 경영자가 경영에서 생기는 딜레마, 관련 정보를 주고 학습자에게 문제를 해결을 요구한다. 딜레마와 정보는 실제 회사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거나 학습에 맞게 재구성하기에, 매우 현실적이다.
경영자가 현장에서 겪은 사건을 중심으로 정보가 제시되어 환경이 구체적이고, 구하기 힘든 실 데이터가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학습자들은 경영자의 머리속에 들어가 문제점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어, 학습 효과도 높다. 케이스 스터디의 가장 큰 장점은 학습자가 스스로 정보를 구조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혼자가 아닌 팀으로 학습을 진행하기에, 사고 과정과 결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있어 집중도가 높은 것도 큰 장점이다.
그래서 케이스 스터디는 북미 지역의 경영대학에서는 이미 대중적인 경영 학습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케이스 스터디는 여전히 생소한 편이다. 그럼에도 케이스 스터디를 경영수업에 활용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씩 있다.
여기 도움이 되는 무료 케이스 스터디 자료들을 일부 소개해 본다.
경영 매거진 동아비지니스리뷰(Dong-A Business Review, DBR)의 장점은 방대한 사례이다. 케이스 스터디의 주제 영역과 사례기업 모두 다양하다. 다만 잡지라는 미디어 매체의 속성상 케이스 스터디의 내용이 기업사례의 딜레마와 이벤트보다는 정보 전달에 가까운 느낌이다.
창업지원재단인 아산나눔재단에서 제작해서 무료로 배포한다. 학습자를 위한 사례와 교수자를 위한 티칭노트가 따로 있다. 하나의 케이스 제작에 교수 혹은 전문가가 투입되어 제작하는 고품질의 자료이다. 다만 케이스의 기업들이 스타트업에 집중되어 있기에 일반적인 기업환경을 익히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근래 케이스 스터디를 활용하는 일이 많이 있는데 상형문자 해석과제의 기억이 종종 떠오르며 교수님에 대한 고마움도 생긴다.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상형문자 몇 개를 가르쳤다고 파라오의 비석을 해석할 수 없음을 교수님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고민하고 발전하시는 계기를 만들어 주려 했던 것 같다. 경영전략의 학습에서 내가 활용하는 케이스 스터디 역시 이용학습자분들에게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