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 2주 정도 상급기관에 자료 취합해서 보낼 때 합숙을 합니다. 야근이 아니라 철야 합숙입니다. 그리고….”
“합숙이라니….(하아)…그 정도면 면접관님은 안 힘드시나요? 어떻게 지금 직장을 다니세요?”
나도 모르게 마음 속의 말이 튀어나오며 면접관의 말이 끊어졌다. 나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는지 아니면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면접관은 무의식적으로 나의 질문에 답해버렸다.
“힘들긴 한데, 저도 딱히 다른 대안이 없어서……”
남은 면접 시간은 대화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엄청난 업무의 양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울듯한 표정의 그를, 나는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격려하였다. 목적을 잃은 면접시간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면접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오는 나의 감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조금은 다른 의미로 입술이 타들어갔음을 느꼈다. 잠시 잊었지만 나는 지원자였고 그는 면접관이었다. 지원자가 면접관을 고충을 들어주는 면접이라니…
이번 취직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 놀랍게도 합격 메일이 왔다.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입사를 포기하겠다고 답장했다. 구두로 포기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안되니 ‘입사포기서’ 양식을 써서 정식으로 제출하라고 다시 메일이 왔다.
양식을 꼼꼼하게 채운 뒤 서명을 해서 보냈다. 나와 면접을 마친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두번째 면접의 추억
온라인 화상회의에 접속하니 3명의 면접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면접관의 얼굴이 어딘지 익숙했다. 화면 밑에 보이는 영어 이름을 보니 기억이 점차 또렷해졌다.
지원 회사에 근무하지 않는데, 아마도 외부에서 위촉된 듯했다. 공공기관 채용이니 그럴 수 있다.
‘롤렉스를 찬 교장선생님’
나와 주변의 몇몇 지인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즐겨했다.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고, 만남의 목적과 무관한 정재계의 인맥을 과시했다. 30분으로 예정되었던 미팅이 1시간을 넘어가며, 의미없이 시간은 표류하고 있었다. 나는 초반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벌컥벌컥 다 마셔버린 커피의 나머지를 아껴가며 홀짝거리기만 했다.
초등학교 조회 시간의 교장선생님처럼, 그의 말은 끊김이 없었다. 그리고 떠나는 순간 큰 결심을 한 듯 그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 말하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 뒤로 손목을 휘감고 있는 반짝이는 롤렉스 시계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을 줄까 싶어’ 다음날 돌아와 정중하게 그의 메일로 질문을 보내보았다. 답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주 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역시나 응답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온라인 공간 넘어 면접관 자리에 앉아있는 그를 다시 만났다. 높으신 지위(?)에 있는 다른 2명의 면접관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20여분의 면접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헛헛한 마음으로 면접을 마치고 나는 채용 담당자에게 지원을 포기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화면속의 그는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면접에서 면접관은 ‘갑’의 위치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채용 시장에서 많은 면접관들은 이유없이,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둘 면접의 추억이 쌓이다 보니나는 점점 그들을 면접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르게, 나도 그들을 면접하였다. 그들을 통해 그들이 속한 조직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은 소심하게 그들에게 ‘불합격’을 주었다.
내가 마주보고 면접관은 어쩌면 미래의 동료, 혹은 상사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일할 미래 일터와 조직의 DNA와 구성원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샘플이다. 면접을 마치고 나면 나는 눈을 감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