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2개월만에 월 사용자가 1억명을 넘어서며 챗GPT는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출시 초반 기계학습 편견을 넘어서는 능력, 특히 창조력에 대한 찬사와 기대감이 시장에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한계점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의 실용성을 중심으로 냉정한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챗GPT의 응용가능성에 대한 예측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챗GPT의 능력은 철학적 사유가 가능한 인간의 그것과 여전히 차이가 크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잠재력을 평가절하했다. 이에 반해 지능인류의 진화를 고찰한 저서 ‘사피엔스’로 글로벌 사상가로 발돋움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간의 창조성은 정보의 구조화를 통한 교육으로 습득 가능함을 근거로 들며,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처럼 챗GPT에 대한 미래 의견은 다양하지만, 순수 현재 능력에 대한 평가는 대동소이하다. 인공지능 특유의 막강한 정보처리능력은 여전히 유효하면서 부가적으로 기존 대화형 인공지능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창의성이 발견된다는 것인데, 요약하자면 챗GPT가 제공하는 답의 절반은 정보 수집과 학습에 근거한 사실이고 다른 절반은 불완전한 창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절반만 채워져 있는 물컵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처럼 챗GPT의 잠재력에 대한 관점은 어떤 절반에 더 초점을 맞추느냐에 달렸다.
기계형 프로슈머가 가져올 효과
결국 챗GPT에 대한 기술적 평가들이 상이한 것은 당연하며, 이 속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워하기보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기회(business opportunity)의 빈도와 강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살펴보면 기술 혁신과 경제가치의 크기가 항상 비례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증강 현실, 블록체인 등과 같은 기술은 급진적 기술 혁신의 사례로 주목받았지만 그것들의 기술 사업화는 여전히 지지 부진하다. 반면 통신 회사의 문자 서비스를 모바일 메신저로 재포장한 정도이며 기술적 진보는 전무하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던 기술은 온 국민이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거대한 사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챗GPT의 어떤 능력을 중심으로 미래의 기회를 모색해야 할까? 실수를 동반한 창조력이 생성할 변화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의응답 형태로 답변을 제시하는 챗GPT는 스무고개놀이처럼 답을 찾아가며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보여주는 답변들은 종종 실소를 자아낼 정도로 불완전하지만 스스로 실수의 영역을 줄이며,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문맥을 만들어 가며 더 나은 답을 찾아 낸다.
창의성에는 실수가 동반된다. 인간의 두뇌도 실수를 거듭하며 창의력을 높인다. 인공지능도 실패와 최적화과정을 반복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창의력을 못 얻을 이유는 없다. 인공지능의 창의력 획득은 자율적인 가치 판단과 실행을 수행할 수 있는 영역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시장 경제에서 전례 없는 생산 및 소비 집단의 도래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
시장 경제는 생산영역과 소비영역이 상호 촉진하는 선순환을 통해 팽창해왔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신기술의 탄생은 기하급수적인 생산량의 증가를 이끌었다. 농기구의 개량은 인류를 식량난에서 해방시켰고, 산업 혁명은 공산품의 시대를 열었으며, 공학의 발전은 과학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생산량의 증가에 대응하며 소비집단도 증가했다. 농업 생산량 증가에 비례하여 인구수는 늘어났고, 선진국들은 산업 혁명의 과잉 생산품을 팔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했다. 공학은 기존의 낙후된 기술을 신제품으로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소비를 촉진시켰다.
창조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학습을 위해 많은 정보를 소비했다. 빠른 정보처리로 생산의 효율성은 높이기는 했지만, 능동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는 아니었다. 이에 반해 창의적인 인공지능은 정보의 소비는 물론 생산도 가능하다. 챗GPT의 경우 정보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창조력을 발휘해 새로운 정보를 생산한다. 이로써 정보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는 셈. 창조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프로슈머(프로듀서와 컨슈머의 합성어)이기에, 정보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경제 생태계에서 이들의 기대 역할은 정보 소비와 생산, 정보 순환까지 포함한다. 기존의 인공지능의 기대 역할이 생산 영역의 최적화에 방점을 찍었다면, 챗GPT 형태의 인공지능은 부가가치 창출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엔지니어들의 시각에서 챗GPT는 기술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많은 미완성 작품으로 보이더라도, 경영인들은 이 신기술이 미래 경제사회 속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능동적 기대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정체성을 가진 판단형 인공지능
창의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미래 사회 속 경제 활동 인구의 증가를 이끌 수 있다. 인간 역사에서 질병, 재난, 전쟁과 같은 전 지구적 재난의 시기를 제외하고 경제활동 인구는 계속 증가해 왔다. 특히 최근의 정보통신기술은 경제 활동 인구수를 물리적인 머리 수(head count) 이상으로 확장시켜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혁명의 대표적인 인터넷 기술을 살펴보자. 인터넷이 만들어낸 디지털 환경은 개인에게 복수의 정체성을 부여하며 경제 활동 인구수를 급속하게 증가시켜왔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온라인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오늘날 인터넷에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이 생성할 수 있는 정체성의 수는 무제한이고, 온라인 서비스는 시시각각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디지털 환경에서의 경제활동 가능 인구수는 실물 경제의 머리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은 분명하다.
판단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온라인 환경 속에서 스스로 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고, 이것은 온라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절대 인구수의 증가를 의미한다. 쌍방형으로 대화를 하는 챗GPT의 경우를 보더라도 최소 둘 이상의 정체성이 상호 작용하고 있다. 판단형 인공지능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정체성의 생성은 무한 가능하다.
이에 더해 판단형 인공지능은 온라인 정체성의 태도를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다. 챗GPT는 이용자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용자의 성향과 특징을 반영한 새로운 답변을 순차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느슨한 관계 속 온라인 정체성들 간의 관계 활성화와 장기적으로는 네트워크 효과의 증폭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계정 소유자의 동의를 얻는 오늘날의 수동적인 온라인 서비스 구독 모델이 앞으로는 판단과 실행권한을 위임 받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결제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 신대륙으로 자주 언급되는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정체성이 더 많고 다양해질 것이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계정 소유자의 성격을 반영해 행동하면서 메타버스 속 관계를 정립하고 확장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새로운 능동적 경제 인격체 등장의 신호탄
챗GPT는 소트프웨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쪽에도 응용될 수 있는데, 이것의 파급 효과는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로봇 공학과의 결합은 특별한 미래를 기대하기 충분하다. 다소 급진적인 의견일 수 있지만, 챗GPT의 핵심인 창조능력과 로봇 기술이 상보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면, 유사인류 등장의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2020년 현대자동차가 1조원에 인수해 화제가 된 세계적인 로봇공학 회사 ‘보스톤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로봇들은 걷고 뛰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물 통과 같은 고난도의 신체 활동까지 완벽하게 모방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간의 사고 방식을 모방하는 능력이 탑재된다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활동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스턴 다이나믹스 로봇 (출처: 연합뉴스 유튜브 썸네일 캡쳐)
핵심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이다. 만약 이들이 법적으로 유사인간에 가까운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면, 개인 수준에서는 전례 없는 형태의 경제활동자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경제시장의 형성이 예측된다. 반면 인간에 완전히 종속하는 수준의 사회적 지위로 활동한다면, 이들이 시장 경제 기여도는 예상보다 낮을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 즉 신분은 경제 활동에 대한 여러 변수를 결정한다. 우선 사회적 지위의 부여는 경제활동의 시작 선결 조건이다. 그리고 사회적 역할은 경제 활동의 범위와 능력에 미친다.
살펴보면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 온전하게 스스로 경제 활동이 가능한 신분은 소수의 집단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동등한 경제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계 사회에서 여성의 평균 경제활동은 남성보다 적었다. 하지만 19세기 서구 사회의 참정권 획득, 20세기 세계 대전 참여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며 여성은 능동적 경제 주체로 자립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성별은 더 이상 경제 활동의 제약 조건이 아니다.
불과 1세기 전까지 존재했던 신분제 사회 속에서 지배자가 가진 경제권은 거대했지만, 피지배자는 제한적이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중세의 유럽인들은 유색인종을 야생 동물과 같은 지위로 간주하며 그들을 노예로 활용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비유럽인들을 야만족으로 묘사한 ‘걸리버 여행기’나 ‘정글북’은 유색인종에 대한 당대 유럽인들의 인식이 나타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노예제도가 폐지되며 유색 인종은 법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고 독립적인 경제적 주체로 변했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피부색이 경제활동 능력을 좌우했던 것이다.
'정글북' 과 '걸리버 여행기'는 유색인종을 야만인으로 묘사한 당대의 시각이 반영된 작품들이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오늘날에도 법은 소수자들에게 법적 지위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시장에는 새로운 역동성이 발현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새로운 지위를 획득한 집단이 시장 경제의 전면에 나서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서방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소수자들은 법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면서 해당 국가에서는 관련 산업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2월 처음으로 법원이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는데, 이런 지위의 획득은 그들의 경제적 권리가 이전보다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예측한다면 국내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산업의 성장곡선 기울기는 가팔라질 것이다.
사회적 계약이 다양성을 넓게 인정하는 이런 흐름에서 기계인간들이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고 시장경제 속으로 들어와 활동하는 미래사회를 그려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오늘날 인류는 인공지능을 지배와 종속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챗GPT가 보여준 창의력은 언젠가는 이들이 독립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인간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의 사회 경제적 위임자(agent) 역할은 충분히 수행 가능할 것이다.
우리에게 스마트폰 운영체제 이름으로 익숙한 그 ‘안드로이드’의 어원이 담겨 있는 공상과학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주인공 안드로이드는 인공지능로봇 모델 중 하나로 미래사회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의 직업은 범죄를 저지른 인공지능로봇을 찾아서 파괴하는 로봇 사냥꾼이다. 안드로이드는 지능은 인간보다 높지만 감정 능력은 낮고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활동도 하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오늘날 챗GPT와 로봇 공학이 결합된 미래의 결과물일 수 있다.
노동의 종말이 불러올 새로운 기회들
“딥러닝 기술은 인터넷 기술보다 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미래 기술주에 투자하는 미국의 유명 투자 회사 아크인베스트먼트(Ark Investment)의 보고서는 인공지능의 핵심모델인 딥러닝 기술의 가치를 인터넷보다 높게 평가했다. 핵심은 지식 노동의 생산성 증가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은 인간만이 가치 창출이 가능한 영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 말하며 3S의 직업군이 특별할 것이라 예측했다. 3S직업군은 놀라운 일(Surprising job), 사회적인 일(Social job), 희소성 있는 일(Scarce job)이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미래 예측의 상당수는 미래 사회를 경제적으로 더욱 풍요로울 것이지만, 우리의 직업이 많이 사라질 수 있다는 다소 어두운 전망을 빼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과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미래의 기계인간을 인류의 적으로 그려내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우울함을 더한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관점을 견지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우울할 필요는 없다. 인류의 직업이 3S의 영역으로 집중되며 노동시장의 크기가 작아지고, 머리수로 헤아려 보는 경제활동 가능인구도 줄어들다는 비관적 의견은 지나치게 감정적일 수 있다. 챗GPT가 촉발시킨 창조적 인공지능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장의 형성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디지털 환경에서 미개척된 신대륙은 아직 많으며, 인류는 인공지능과 함께 다채로운 정체성을 생성하고 이들의 연결고리는 가깝고 능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와 인공지능이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형태의 지식 시장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유사인간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정식으로 편입해 독립적인 경제 집단으로 활동하는 미래도 그려 볼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세계적인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가 미래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시한 말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 가 창업 초기 구인 공고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으로 유명해졌는데,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장이 하나 더 있다. “그런 노력은 협업으로만 가능하다(such endeavor should happen in a collaborative way)”. 인간의 창의력과 인공지능의 창조력을 경쟁의 관계가 아닌 상호협력의 관계로 바라보는 경영자들에게 오늘날 챗GPT 신드롬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