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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정숙 Jul 14. 2016

하이힐

-이....제.... 하....이....힐....못....신...어...요!

-데...이...트..도...못....해....요!


그녀는 몇 달 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였다. 남자친구가 멀리 있으니 만날 때마다 신혼여행지는 어디로, 혼수품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계획하다 헤어지기 바빴다. 남들보다 늦어진 결혼이라서 출산 계획까지 세워둔 터였다.


그날,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다음날 남자친구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다. 이번 주말엔 어디로 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즐거운 고민이 되었다. 집 앞 다와 갈 즈음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고 그 순간 교통사고가 났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한 여성이 미처 신호가 바뀐 것을 모르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그녀를 들이받았다. 그녀는 차에 부딪히면서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도로에 떨어졌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머리엔 수술한 붕대로,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골절 손상을 입고 수술해서 깁스한 상태였다. 외상성 뇌출혈로 가족들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고 앞도 잘 안 보이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것은 사고가 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갈 때였다. 극심한 두통으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탕 탕치고 있었다.그녀는 누군가가 안아서 휠체어 태우지 않으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갖가지 색의 진통제와 항생제를 한 움큼 먹어서 그런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더듬더듬 말하는 표정에서 심한 인지기능 손상이 있겠다 싶었다. 


그녀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보여준다면서 펼친 폰 화면에는 연예인인가 싶게 미모의 젊은 커리어 우먼이 웃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바로 그녀라고 한다. 폰 사진과 그녀를 번갈아 봤다. 사진 속 주인공은 정말 같은 여성이 봐도 매력적이고 당차고 아름다웠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았다. 꽃 같은 그녀가 지금 자신의 처지를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절망은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사고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자친구에게도 미안하고 자신을 닦아주고 손발노릇하고 있는 부모님에게도 염치가 없다고 했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자신처럼 똑같이 복수하고 싶다"며 저주했고 자신을 심각하게 비관했다.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잠도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이해되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일을 닥치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횡단보도를, 그것도 모든 규칙을 준수하면서 보행하던 자신에게 난데없이 차가 돌진하였다.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다. 극심한 두통에 1부터 10까지 숫자 세기도 할 수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 어느 누가 운명이라고 순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며 이제 하이힐을 못 신는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다시 자신의 머리를 탕탕 친다. 정신적 고통의 크기만큼 두통과 우울증의 강도도 깊어만 보였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 당당하게 이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동화 속 이야기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이제 하이힐을 못 신는다는 그녀의 느릿느릿한 말이 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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