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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자 혜운 Nov 14. 2024

지긋지긋했던 남아선호사상

나는 위로 오빠가 한 명 있는데, 어렸을 때 엄마는 집안일을 나만 시켰다. 왜 오빠는 안 시키냐고 따져 물었지만 답을 들은 기억은 없다. 항상 불만이었다. 나만 집안일을 시키는 엄마가 내가 결혼하면 물에 손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럼 자기부터 시키지 말던가. 모순적인 엄마의 말과 행동이 불만스러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남학생과 여학생을 대하는데 차이를 보이면서 설명이 충분치 않은 선생님을 향해 크게 반항한 적도 있었다. 5학년짜리가 교실에서 책상을 뒤엎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던 내가, 나와 반대 극단에 서 있는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설거지는 누가 하냐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남편이 '나한테 설거지 절대 시키지 마라. 난 주방에 절대 안 들어간다.'라고 말을 해서 내가 '넌 설거지하면 안 되는 사람이고, 난 설거지해도 되는 사람이야? 미친 거 아니야?'라고 답했다가 파혼하자는 소리를 들었다.

내 남편은 가부장주의 가족 내에서 남아선호사상의 끝판왕을 경험하며 자라왔다. 집안의 장손이었던 남편은 조부모에게 떠받들어 키워졌고, 이를 자부심으로 느끼던 남편은 나 또한 자신에게 그런 대우를 해주기를 요구했다.

결혼 전 임신을 해버렸고, 아이는 낳고 싶은데, 그 당시 혼자서 아이 키울 자신은 없어서 일단 이 사람과 살아보자 했다. 그리고 내심 결혼하면 그래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도 있었다.

오산이었다. 힘들었다. 아이가 어려서 더 힘들었다. 힘들 때마다 실시간으로 남편욕을 했다. (물론 남편에게는 말고) 그때마다 누다심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네가 먼저 더 하라고. 그래서 선순환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3년만 딱 눈 감고 다 맞춰주라고 했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면 고마움을 느끼고 움직일 거라고. 만약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 계속해서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땐 갈라서도 된다고. 이혼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후회 남지 않아서 더 좋을 거라고 말이다.

이혼이라는 카드가 내게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만약 아이와 단둘이 살아간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부모가 있고, 형제가 있다는 생각에 안심됐다. 그리고 누다심 센터 가족들이 있기에 든든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남편과 친정엄마에게 도움받을 수 없을 때 수풀(누다심센터 사람)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부탁할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마웠고 편안했다.

일단 상대가 원하는 만큼 다 해주자.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남편은 직장 생활 외에 다른 것에는 1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끔 움직였다. 주말에는 늦잠 잘 수 있도록 아이와 나가있었고, 주말 매 끼니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주중에도 갑자기 일찍 와서 저녁상을 차려야 할 때도 너~무 기뻐하며 밥을 차려주었다.

초반에는 억지로 했다. 하다가 불쑥불쑥 화가 나기도 하고,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누다심센터 사람들이 독려해 줬다. 그 힘으로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나도 즐기며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희생시켜가며 가족들을 위해 행동한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도 받는 게 많아졌다.

일단 남편이 고마워하는 게 느껴진다. 분위기 안 좋게 조성해서 눈치 보게 만들면 그 상황을 만든 내게 불같이 화를 냈었는데, 이제는 내 눈치를 보고 움직일 때도 간혹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 아이였다. 아이를 낳을 때 '이제부터 부부 싸움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내 아이에게 다른 건 못해줘도 부모가 싸우는 건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그거 딱 하나는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결심대로 살아가고 있는 듯해서 그걸로도 위안이 많이 된다.

그중에 제일 놀라운 경험은 이거다. 눈 딱 감고 억지로 내 가족을 위해 행동했는데 오히려 가부장주의나 남아선호사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남녀차별하지 말라며 맞서고 싸울 때보다 더 존중받는다고 느껴진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껏 가부장주의 틀 안에 나를 가둬둔 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분노의 본질은 네가 더 대우받나, 내가 더 대우받나, 저울질하며 내가 조금이라도 덜 받을 때 나타나는 억울함이었다. 그 분노의 명분을 갖기 위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가져와 이용했을 뿐이다. 비단 남녀 관계에서만 그랬을까. 나는 동성과의 관계에서도 '받는 자리'에 위치하고 싶어 했다. 그냥 내가 이기적라서 그랬던 거다.

나이 마흔을 지나 이제서야 좀 자유로워지다니. 우리 부부 둘 다 극단 끝에 있었지만 결국엔 누가 더 대우받냐, 누가 더 존중받냐 이런 비교질 싸움을 했던 거다. 그러다 비교하지 않고 한쪽에서 마냥 맞춰주었더니 저쪽에서도 더 퍼주고 싶어 난리다. 아,,, ㅋㅋ 사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저 나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상대방 기분이나 욕구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내 욕구보다 관계를 먼저 고려하는 부부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게 느껴진다. 일단은 큰 틀에서는 그렇다. 여전히 각자 억울하고 서운해하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우린 사람이니까. ㅎㅎ

​참으로 다행이다. 내 아이에게 불필요한 편견을 심어주지 않을 수 있어서.

#살아가면서서로맞춰간다는건허상

#잘지내는부부는철저히한쪽에서맞춰주고있을뿐

#네가편할때상대도편할까?!

#ㅋㅋ여전히뒤끝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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