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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l 25. 2019

25. 겨울과 봄 사이에

오랜만에 간 한국은 참 편안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네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고,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항상 미국에서 가족 모임이 있는 누군가를 간절히 부러워해 본 적이 있기에, 더욱 좋았다. 오랜만에 온 우리 집은 참 낯설었다. 몇몇 가구와 가전제품이 바뀌었는데, 그것들이 더더욱 남의 집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시간은 참 쏜살같이 지나갔다. 건강검진을 받고, 미용실에 가고, 병원에 가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대구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이들과 하는 대화와는 또 다른 대화, 지난 2.5년 동안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를 생각 들게 하는 시간이었다. 중고등학교 함께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빵을 사 먹고, 점심을 같이 먹고, A를 말하면 Z까지 눈치채던 하루 종일 붙어있었던 친구들인데, 삶이라는 게 이렇게 달라졌구나를 느꼈다. 친척 집, 할머니 집에 다녀오니 3주라는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다. 처음에는 참 길다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루빨리 미국에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싶은 마음도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가고, 단 한 번도 크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역시 집이어서 일까, 엄마, 아빠와 함께여서 일까 마지막 한 주는 심한 독감이 걸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삼주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무엇보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새로운 2018년을 한국에서 맞이하는 것이 참 뜻깊었다. 한국에 오면 한국이 너무 좋아, 미국에 가기 싫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돌아가서 해야 하는 일들 등등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특히 미국에 돌아가면, 지도교수를 정하고 논문을 시작을 생각이 가득했다. 또 이틀 후면 개강에 수업을 듣는 것도 걱정이 많았다. 그렇게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 정말, 한국에 다녀온 것이 맞을까 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돌아와서 몇 날 며칠을 계속 눈물바람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너무 미안했었다. 그런 내게 classmate가 “Do you miss your family? Do you want to live with them?”를 물었다. 내 대답은 “Well, I miss my family at all times. But, I can’t live with them forever.” 항상 그립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받아들였다. 





2번째 학기는 Technical writing, Environmental geoscience, Stratigraphy 수업을 들었다. 두 번째 학기니까 첫 번째 학기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내가 선택한 과목들은 참 만만치 않았다. Technical writing은 미국 학부생들과 같이 들었고, Environmental geoscience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중국인 교수의 수업이었다. Stratigraphy는 첫 번째 학기에 엄청난 아픔을 주었던 S 교수님의 수업으로, 학부생과 몇몇의 대학원생이 있었지만, 대학원생은 학부생보다 추가의 숙제가 주어졌다. 그토록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S 교수님의 수업을 다시 들었던 이유는 S 교수님과 논문을 쓰고 싶어서였다. 힘들겠지만 값질 것이라 생각했었고,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를 하고자 한다면, 뭔가 의미 있는 대학원 생활을 보내려면 S 교수님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S 교수님과 하는 게 맞다 싶었고, 그렇게 교수님께 논문 지도교수를 상의하러 갔을 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3주 동안 한국에 갔을 때, 학부 지도교수님을 두 번이나 뵈었다. 지도교수님께 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을 하였고, 서 너 권의 전공 책도 선물로 주셨다. (학부 지도교수님은 내게 참 특별한 분이시다. 대학생활 내내, 나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선배이셨으며, 조언자이자 조력자이셨다. 난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쪼르르 학부 지도교수님 오피스로 달려가 투정 부렸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찾아간 S 교수님께 논문 Advisor에 대해 말했을 때는 2월 초였다. 나는 2월 초부터 논문을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이제부터 열심히 준비하면 돼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면, 인생은 완벽하겠지만, S 교수님께서 연구년으로 남극에 가셔서 석사 학생을 받으실 수 없다고 하셨다. 물론 내가 졸업을 1년 늦추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일은 죽어도 싫었기 때문에 참 청천벽력 같은 답변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고민을 시작했을 때, TA를 하고 있는 암석 과목 교수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시면서, 논문을 같이 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말씀드리기도 전에 교수님께서 제안해주신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지만, 암석학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힘든 분야여서 망설여졌다. 더군다나 학부 지도교수님께서 암석학 교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추천하지 않으신 분야였고, 이왕 한다면 다른 분야를 꼭 공부하고 싶었다. 그렇게 박사 오빠에게 고민을 말했을 때, 박사 오빠는 정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옵션을 제시했다. 몇 주 동안 계속 새로운 신임 교수 후보자들 세미나가 매주 있었고, 내게 그 분야도 지질학 중 하나이니, 새로운 신임 교수와 졸업 논문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에이, 말도 안 돼'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신임 교수가 결정되었을 때, 한 교수님께서 내게 누가 되었는지 귀띔해주셨다. 2018년 여름 졸업을 원하면, 지금 당장 연락하라는 박사 오빠의 강력한 조언에 따라, 새로운 신임 교수, Y 교수님께 이메일로 연락을 드렸고, 짧은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Y 교수님과의 이메일과 스카이프를 오간 논문 준비가 시작되었다.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둘 결정이 났고, 이렇게 하나둘씩 자리를 잡혀가고너무 힘들었던 S 교수님의 Stratigraphy 수업 중간고사가 끝난 날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3월 초였지만겨울과 봄의 사이였다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유럽여행에 마냥 설레기도 했고여유로운 봄방학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만 같았다파리는 뉴욕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말로만 듣던 에펠탑을 보며개선문을 보며 정말 내가 파리에 왔구나를 실감했다대학원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아니 평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유럽 여행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한 번도 파리를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파리를 한 번만 가본 사람은 드물다는 말처럼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었다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쇼핑 숍들, 싸고 맛있는 달달 고리들, 세련되고 기품 있는 건축물들 모두 사랑스러웠다그렇게 파리에서의 주말을 보내고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향했다이번 여행의 총 7개의 여행지 가운데 가장 눈물 콧물 범벅인 강력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베네치아 여행이 날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비행기에 올랐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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