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 라리 Lari
각국 화폐에 실린 인물이나 건물 등의 그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때로는 자국의 관광지 홍보를 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일부 나라들은 실질적 혹은 합법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영토를 자국 화폐에 싣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 화폐에 영국령의 포클랜드제도, 아르메니아 화폐에 터키 영토에 있는 아라랏 산, 아제르바이잔 화폐에는 유엔 입장에서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 아르메니아의 지배를 받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그림이 실려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조지아 화폐 200라리에 실린 수후미다. 필자는 이번호에서 조지아 화폐를 통해 조지아-압하지야 분쟁과 함께 조지아 역사와 여행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2008년 여름, 전 세계 언론은 조지아-러시아 전쟁에 주목했다. 이 전쟁은 소련의 붕괴로 조지아가 독립하면서 조지아가 자국 영토 내에 있었던 압하지야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독립 시도를 막으려 한 것에서 기인했다. 1990년대 초에 이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휴전이 되었고, 조지아 군이 자국 내에 있는 이 두 지역에 직접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2006년에 남오세티야에서 독립을 안건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 조지아 정부는 다시 전쟁 준비에 나섰고, 2008년에 남오세티야 자치정부가 독립을 공식 선포하자 조지아 군이 이 지역에 진입했다.
200라리 뒷면에 담긴 수후미, 조지아의 의도는?
그러나 이때 러시아가 남오세티야 편을 들고 조지아 군과 직접 전쟁을 벌여 조지아 군을 두 지역에서 철수시켰고, 러시아, 베네수엘라, 나우루 그리고 니카라과가 압하지야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야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200라리 뒷면에 풍경이 실린 수후미를 수도로 삼은 압하지야 공화국과 츠힌발리를 수도로 삼은 남오세티야 공화국은 국제법적으로 조지아의 영토지만, 실질적으로는 러시아 보호 아래 있는 독립국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지아 정부는 이 지역의 그림을 화폐에 실음으로써 이러한 상황을 반박하고자 한 것이다.
영토 분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사실 조지아 화폐는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의 역사 및 관광지를 소개하는 일종의 가이드 자료다. 조지아 역사에 대해서는 20라리 뒷면에 보이는 바흐탕 1세 동상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베리아 왕국(동조지아 왕국)의 군주였던 바흐탕 1세는 근접한 서부와 남부의 땅을 그의 통제권 아래로 가져왔을 뿐 아니라 조지아 민족의 전체성을 만드는 공을 세웠다. 고대 조지아 도시인 므츠헤타에 자치 독립 교회 총대주교직을 확립시켰던 그는 현재 수도인 트빌리시를 자기 왕국의 수도로 만들려고 했다. 10세기 말에는 조지아 왕국들이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통일되었고, 11세기 조지아 왕국은 왕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제국이 되었다.
조지아는 12세기에 황금기를 누렸다. 이 시기를 잘 보여주는 화폐가 100라리다. 화폐 앞면에 초상화로 표현된 사람은 쇼타 루스타벨리이고, 조지아의 국가적인 서사시 <표범 가죽을 두른 기사>의 저자다. 그는 조지아 문학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 명이자 조지아 어가 현재까지 쓰이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시인이다.
100라리 뒷면에 보이는 건물은 마르트빌리 수도원이다. 7세기에 성당으로 완공되었다가 무너진 이 건물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 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조지아 족이 황금기를 거치면서 이 성당을 복원하여 다른 건물들을 추가해 오늘날의 마르트빌리 수도원이 된 것이다. 11세기에 조지아 건축계에서 명작이 된 마르트빌리 수도원은 오늘날까지도 여행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끄는 관광지다.
한때 황금기를 구가했던 조지아는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캅카스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분단되었고, 러시아, 이란 그리고 터키 사이의 패권 충돌 현장이 되었다. 19세기까지 영토를 상당부분 상실한 조지아의 이메레티 왕국은 1810년에 러시아 제국의 땅으로 편입되었고, 1801년에는 동남부에 있는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이 이란과 러시아 제국에 의해 분단되었다.
오페라 극장과 트빌리시 국립대, 독특한 양식으로 눈길
조지아는 이후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현대화가 시작되었다. 19세기 중순부터 현대적인 건물, 교육, 예술 양식이 조지아에 유입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2라리 뒷면에 보이는 조지아 국립 오페라 극장이다. 1851년 수도 트빌리시에 세운 이 오페라 극장은 조지아뿐만 아니라 캅카스 지역에서 예술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수도 트빌리시에 온 외국인들에게 필수 여행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 제국이 공산주의 혁명을 맞으면서 조지아는 1918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1920년 볼셰비키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되어 1922년 정식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에 편입되었다. 독립을 선언한 뒤 3년여의 시간 동안 조지아 지식인들은 뛰어난 민족을 양성하여 다시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 교육에 집중했다.
바로 이 시점에 생긴 교육기관이 5라리 뒷면에 실린 트빌리시 국립대학교(TSU)다. 조지아는 물론이고 캅카스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TSU는 그 지역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담고 있기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