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서른살을 마감하고, 서른한살을 설계해본다.
서른살. 무엇이든 다 잘해낼 수 있는 어른이 될것만 같았다. 아홉수를 호되게 경험해서인지, 멋진 서른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았고, 그랬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서른살이 되어보니 시트콤 같은 내 인생은 변함이 없었다. 아듀 2016.
그렇게 다이내믹했던 서른살을 마감해본다.
이직을 하고, 굉장히 힘들었다. 일이 힘든 것은 버틸 수 있었지만, 직장 상사는 나에게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했고, 매우 불편해졌다. 권위를 이용해 압박을 하기 시작해 말을 잃기 시작했고, 활발했던 내 성격은 점차 폐쇄적으로 변해 그저 아무와도 이야기하고 싶지않았다.
왜 내겐 이런일들이 일어나는걸까?
지난 날들도 시트콤 같았지만, 막 이직을 해 너무 행복할 것만 같던 직장생활은 6개월도 안돼 또 다시 이직을 감행했다. 녹취록이며 다 가지고 있었지만 무언가와 싸우는 것 조차도 지칠대로 지쳐있어 그저 내려놓기로 했다. 커리어 포트폴리오가 엉망진창이라며, 앞으로의 이직할때 얼마나 힘들지 아냐고 수많은 헤드헌터들의 의견을 들었지만. 뭐 너무 망가졌으면 다른일 하면서 살지란 생각에 떠나보내고 꽃농부 생활을 시작했다.
농장에서의 여름은 행복했다. 더위를 죽도록 싫어해 나로인해 여름만 되면 에어컨값이 어마무시하게 나오는 우리집인데. 땀을 뻘뻘흘리며 농장에서 식물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면 버텨낼 수 있었다. 돈을 바래서도 아니고 오직 내 취미활동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한 것. 엄마와 이모는 에어컨 없이 못사는 놈이 어찌 저리 바꼈냐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도 모른다.
이유는 내도 모른다고.
정말 한가득. 이녀석들 대부분 분양 보내졌다. 물론 중간에 다시 복직하면서 아직도 나와 함께인 녀석들이 있지만, 내 취미활동은 서울시 야시장에 당첨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고 놀라운정도로 인기있게 분양되어져 나갔다. 나는 행복을 되찾았다.
마케터라서인지, 무언가 시작할때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겠다며 스티커 제작도 했드랬다. 이름은 이모부가 지은 모네의 정원. 고급감있는 디자인까지 나오고나니, 내새끼 낳은 마냥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친구들이 간혹 너의 식물이 팔려서 여러 블로거들 사진에 등장하고 있어 하며 사진을 보내올때면, 가슴 찡함이 느껴진다. 진짜 무언가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덴티티. 그것일지도 모른다.
도란도란.
구루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내년에 만들 모네의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말만 번지르르 하다며 도대체가 꽃이름 하나도 모르면서 어찌할거냐는 이모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법 말이 잘 통했다. 식물은 이모가 마케팅은 내가 하면되지 않겠냐며 우리는 서로의 R&R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잘해봅시다. 사업파트너씨.
그렇게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곧 정말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직을 한 이후 전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돌아와달라.
마치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자 하는 기분을 느끼는 듯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쪼그라드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혹자는 다시 돌아오는 것은 미친짓이라며 욕을 퍼붓기도 했지만, 혹자는 큰 회사에서 다시 잡는 다는것은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라 불렀다. 나는 이 기회를 잡아보기로 했다.
광고주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없애고 싶어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광고주라고 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마케터로서 늘 분석과 전략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트랜드에 앞서는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터가 되려 노력하는 광고주들도 존재하고 있다. 나 또한, 숫자로 하는 마케팅을 통해 정확한 근거와 분석을 통해 일하려 한다. 알고리즘을 알아내려 하루에 몇초 단위로 숫자를 보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유독 많은 대행사와 매체사들을 만났는데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말이 통한다 싶다면 내 패를 꺼내 보이기도 하지만, 간혹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이들을 만나면 마음속에 out 을 담아두고 절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채 점차 드랍시킨다.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커뮤니케이션조차 낭비라 생각이 들때가 있기에. 예전이라면 화를 내거나 흥분하기 십상이지만, 서른살이라서인가. 제법 도와 모를 가려내는 능력이 생긴 듯 하다. 이렇게 더욱 건강한 마케터로 성장해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와중에 든든한 전문가 지원군들이 내 뒤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어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일지도. 그래서 올해 유독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
드디어 기다리던 출장. 글로벌 기업에 일하다보면 우선 영어가 는다. 물론 기존의 나는 미국식 영어를 해왔는데 발음이 다른나라 식으로 변해버려 속상할때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영어를 적어도 까먹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어 그마저도 고마울 따름이다. 또, 처음으로 드디어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2박3일 심천-상해를 오간 아주 빡센 일정이지만, 빡세어도 좋다. 비행기를 타는일은 나같은 역마살이 있는 자에겐 늘 신나는 일이니까.
아침 7시 출근을 한다. 늘 막히는 길이지만, 지하철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해가 뜨는 모습이 근사한날에는 '그래 너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런칭쇼가 있던 날에는 새벽 4시까지 근무했다. 엊그제는 새벽 5시까지 근무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낼 수 없지만 내가 맡은 캠페인은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이유로 나는 그 많은 잠을 모두 이겨냈다. 그 사이 5키로나 몸무게가 빠져버렸고, 워커홀릭보다는 일에 미친자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일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서른살 꽃농부의 삶은 잠시 멈춰야했고, 그렇게 겨울을 맞이했다.
첫 직장도 차와 관련된 일이었고, 명품가방보다는 휠 하나에 관심이 많은 유독 차를 좋아하는 나. 서른살이 되는해에는 반드시 두번째 차를 만나겠다고 생각했고, 일이 바빠짐에 따라 차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면서 나는 내 서른살의 꿈을 무리하게 감행하기로 했다. 물론 짝꿍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던 일.
원래 원하던 녀석은 아니지만, 이녀석이다 싶어 결국 최종 입양한 우리 띠띠. 서른살 나는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싶었고, 직장이 가장 복잡한 시청역 근처지만 여전히 띠띠와 함께 매일 아침과 저녁을 함께한다. 20대에 꿈꿔왔던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것에 참 행복했다.
죽을만치 고통스러울 수 있는 아침 출근길이 이녀석으로 하루하루 행복하다.
눈이 쌓인날. 전날 새벽에 들어와 피곤했지만, 아침에 소복히 쌓인 눈에 추운 출근길에도 기분이 좋다.
왕년에 여행 파워블로거였기에 여행은 나와 떼어놓을 수 없다. 적금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틈만 나면 가방 하나 메고 룰루랄라 떠나버리는 역마살. 요즘은 해외여행을 혼자 가는 친구들이 많아졌지만, 내가 어린 시절엔 그리 많은 이들이 즐겨가진 않았던 거 같다. 떼어내려야 뗄 수 없던 나의 해외여행 또한 바쁜 생활 속에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해외 출장으로 겨우 한번, 그리고 부산에 결혼식을 갈때 억지로 비행기 한번 타기. 그치만 내년엔 1월에 런던을 시작으로 여행가로서의 나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인생을 살면서 기적같은 일을
몇번이나 경험할까?
물론 시트콤보다 더한 인생을 사는 나에게는 역변의 시간도, 기적같은 날도 제법 많은 편이다. 대부분 으악 스럽게 안좋은일이 많은편이기도 하지만, 인생에 있어 가장 잊지 못할 기쁜 순간이 찾아왔다.
책을 즐겨읽는 편이 아닌데다가, 글쓰는 솜씨가 그닥 없는 편인지라 블로그를 하며 늘 고민이 많았다. 힘들 즈음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많은 글들을 읽다보니, 내 솜씨로는 안될거란 기분이 확고히 들었다. 하지만, 뭐 한번 뿐인 인생이야 도전한들 어떠하리.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 감정을 적어내려가자 싶었다.
서른살 꽃농부 이야기를 하나둘 써내려가며, 글에 대한 재미가 붙었다. 블로그와는 확연히 다른 나의 톤앤매너는 사뭇 진지한 서른살 나의 감정을 그대로 써내려갔다. 시애틀 추억에 잠시 잠길 즈음, 나의 시트콤 인생 중 가장 재미있던 스타벅스의 추억을 나누었는데 글쎄 10만명은 거뜬히 읽은데다가 페이스북이며 이곳저곳에서 내 글을 봤다는 제보가 카톡에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동과 기적은 잊혀지지않는다.
마치 대스타가 된 기분이랄까. 누군가 나와의 공감, 그리고 소통을 한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적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나도 할 수 있었다.
멈춰버린 것 같은 나의 서른살 꽃농부의 삶. 하지만 그간 많은 준비가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대한 규제를 필두로, 우리에게 맞는 건축사무소를 찾는 일. 젊은 감각을 원하지만, 비싸지 않을 그런 누군가의 도움이 강하게 필요했고 여러 수소문 끝에 다음주면 드디어 첫 미팅. 부천시와 미팅은 이미 마친 상황. 그리고 3-4월엔 꼭 열겠다는 다짐으로 움직이고 있다.
마케터의 삶으로는 12월까지 바빴고, 내년이면 1분기만큼은 제법 한가한편이라 나의 삶을 다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기에 여행가로서의 나도 내년 초면 바로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다이내믹했던 나의 서른살.
아홉수로 유독 힘들었기에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서른살은, 내가 상상한것보다 시트콤 같았지만 화려한 해피 엔딩이다. 아주 만족스럽게 서른살을 마감하고, 나는 다가올 서른한살을 멋지게 설계중이다.
그래, 아주 멋진 서른살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