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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Jan 18. 2017

느낌적인 느낌, 브랜딩을 시작하다

본업인 마케터의 본능에 충실하다

꽤 오랜기간 IT마케터로 살아왔다. 전공까지 살리면 약 10년 가까이 마케터인셈이다. 나는 마케터라 불리우는게 좋은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AE들처럼 대단한 기획을 잘하지도 못하고, CD들처럼 엄청나고 신비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생각해내지도 못한다. 다만, 조금 나를 좋게(?) 포장한다면, 전략가인셈인지라 예산에 맞는 기획을 세우고, 크리에이티브 방향을 정하지만, 그 뜻이 틀려 빠르게 우회해야하는 경우엔 깊은 고민과 분석을 통해 급히 키를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제 아무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마케터'일지라도, 좋은 통찰력과 순발력이 필수인데다 전략을 짜야하니 책임감도 꽤 높은편이라 아무나 마케팅한다는 말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곤한다. IT라는 분야의 마케터로 지내다보면 얼리아답터라는 말이 있듯, IT도 패션못지 않게 빠르고 민감한 분야인지라, 다이나믹함이 느껴지고, 수없이 변화하는 알고리즘과 숫자를 통한 마케팅을 하곤한다. 재밌다.


이런 내게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손재주는 제법 좋은편인데 솜씨는 아주 나쁘다. 그래서 그림이고 뭐고,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 늘 이런 말을 던지곤 한다.


'그 있잖아요. 그 예쁜거'

'그 있잖아요. 그 재밌는거'


아...머리속에 있는데 이 말을 표현하기가 이렇게 어려울때가. 느낌이다.

느낌을 표현하기엔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로는 부족한 이 기분. 그럴때마다 아주 곤욕을 치르곤 한다.


느낌적인 느낌. 그 느낌을 살려, 나의 농장에도 브랜딩을 입힐 준비를 시작했다.




꽃농부, 브랜딩을 시작하다.

하우스를 짓겠다고 생각했을때, 어떤 형태로 지을까가 가장 많이 고민됐다. 이런 하우스를 짓고 싶다고 표현해야겠는데 수백개의 비닐하우스를 찾아봐도, 수십개의 온실을 찾아봐도 내 맘에 쏙 닿는 녀석들이 없었다. 망설임의 시작, 마법의 '그 있잖아요' 가 또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 있잖아요, 유리로 된 그 느낌'

'있긴 뭘있어, 온실이 다 유리지'


아 맞다. 그랬다. 비닐하우스도 투명하고, 온실은 말할 것도 없이 다 유리였다. 이거 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니 난감했다. 브랜딩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느낌과, 사람이 받아 들이는 느낌이 같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 브랜드답다' 하고 느낄 수 있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만 일방적으로 다가간다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래서 그 절묘한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착- 하고 달라붙을 때, 저 브랜드는 아이덴티티가 있어. 라고 느끼게 된다. 공감을 불러일으킬 그 명확한 컨셉의 발굴, 그것이 브랜딩의 시작이다.



하우스는 이런 서로 다른 느낌들이 존재했다.


이렇게 입구가 넓은 유리온실같은 느낌. 우리나라로 보면 알렉스더커피가 이런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다.

조금 더 세련되었지만 농장같은 느낌을 주는 컨테이너 느낌을 본다면 아래와 같다.



 유리온실과 컨테이너를 절묘하게 섞었는데 모던한 느낌도 나지만 텍사스 어딘가에 있을법한 농장의 느낌도 든다. 아주 절묘하게 세련됨과 러프한 느낌을 잘 섞어주었다.



최근에 올렸던 유레카를 외친 두 공간도 그렇다. 한쪽은 유리로만 만든 아주 모던한 느낌의 온실이라면, 한쪽은 완벽히 막혀있는 창고형태 느낌의 공간이다. 창고이지만 우리나라에 많은 인더스트리얼 혹은 빈티지 창고의 느낌은 아니다.


이런 여러 느낌도 모두 하우스에 적용 가능하다.



최근에 내가 가장 모티브로 삼는 공간. 이유는 비닐하우스가 가능해야하고, 입구쪽은 유리로 지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가급적 '비닐하우스' 느낌을 더 살릴 수 공간이었으면 했고, '유리'가 세련되게 표현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내가 생각하던 하우스는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서로 비슷한 하우스들이지만, 느낌 자체가 많이 다르다.

어떤식으로 공간을 구성하느냐 부터가 브랜딩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느낌도 한번 봐볼까?



에코, 그린. 재활용은 내게 있어 중요하다. 이미 재활용한 드럼통이 농장에는 한가득인데, 드럼통을 어떤 느낌으로 재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재활용이라는 것이 정말 한 끗 차이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닌 쓰레기로 변할 수 있어 아주 신중한 고민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첫번째 드럼통은 빈티지스러움. 정말 말그대로 재활용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 빈티지스럽고 험블한 느낌이 강하다. 두번째 재활용은 라이팅 픽스쳐로 사용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무거워서 제작하지 않는한은 어렵다고 한다) 내가 볼땐 꽤나 근사한 컨셉이라 생각했는데, 사업하는 친한 오빠에게 물으니 삼겹살 집에 어울린다고 한다.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가. 그 순간 드랍이었다. 마지막은 세련되고 모던하면서 프리미엄 느낌까지 가미되었다. 세련된 무광 페인트가 깨끗하고 모던한 느낌을 살린것인데, 샤넬이란 브랜드의 마무리가 나의 마음을 설레게까지 한다. (제길. 브랜딩에 넘어간 것인가..)


어찌되었든 내가 생각한 것은 화분으로는 첫번째, 테이블로는 세번째인데 이 두 느낌을 어떻게 적절하게 섞을지가 지금부터의 고민의 시작이다.





다음 느낌적인 느낌.

바로 농부.


본디 농부라 하면, 멜빵바지에 삽을 짊어지거나, 트랙터를 타고, 밀집모자를 쓴 수염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떠올릴 수 있다다. 혹은 우리나라 농부라면, 햇빛가리는 모자와 팔토시에 몸빼바지 위에 장화를 신은 것이 가장 바람직한(?) 농부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일을 할때는 아주 근사한 펄럭이는 바지를 입고 있다.


그런데 나는 '꽃농부'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싶었다. 예전에 스티커를 처음 만나러 갔을 때 디자이너분께서 '플로리스트세요?' 라는 질문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농분데요' 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나는 플로리스트가 아닌 '꽃농부'였고, 아주 마음에 드는 이 단어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멜빵만 입어도 꽤나 간지나보이는 패션도 있고 청으로 된 앞치마를 두른 근사한 농부도 있다. 내 편견을 완전 깨버리는 순간. 뭐야, 엄청 근사하잖아.



어쩌면 꽃농부라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좀더 농부보다는 플로리스트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을 보고나니 우리 농장에 올 사람들에게는 '꽃농부'라는 수식어가 어울릴만한 멋진 에이프런을 나눠주는 것도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원지(onezie) 스타일은 그야말로 아이덴티티가 생길법하다. 되게 멋있다. 조금 비현실적인듯 하지만.


사실은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진 농부가 될 수 있다. (트랙터를 운전하며 후진할게 하는 멋진 오빠가 멋있어서 그런건 절대 아니다...험험)


'꽃농부'가 어울릴만한 그런 이미지상의 농부 모습을 찾는것도 지금 내가 해야할 브랜딩의 일부인 듯 하다. 지금 껏 없던 새로운 공간이니까. 그래서 나도 꽃농부라는 기운이 잔뜩 들만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 찾아야겠다.



오늘의 마지막 느낌,

패키징.


예전 내가 사용한 모네키트였다. 이녀석을 구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1) 고급감은 제법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2) 나는 돈이없고 3)기성품을 사자니 마음에는 들지 않는데 4)스티커마저도 작았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많이들 좋아해주셨고, 제법 인기 있었다. 원채 가격이 나가는 박스인지라, 재질이 두껍고 튼튼해 화분이 깨지는일이 없었다.


봄 즈음에는 드디어 모네의 공간이 생길 예정이니 본격 패키징에 신경쓰기로 했다. 물론 디자이너 언니가 붙어도와줘야할 일이라 시간이 제법 필요하겠지만, 패키징에 대한 고민은 이전부터 꽤나 많이해왔다. (아주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에 서칭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브랜딩에 있어 패키징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느낌적인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박스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은 모두 동일하지만, 하얀박스에 크라프트 스티커, 크라프트박스에 블랙 스티커, 크라프트 박스에 화이트 스티커의 느낌은 왠지 엄청 다르다. (어쩌면 나만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화장을 잘 하지 않지만, 굳이 묘사를 해보자면, 남자에게 어떤 핑크 립스틱 색이 제일 예쁘냐 묻는 기분이다. 결국 고르지 못했고, 아직까지도 많이 고민 중이다. 하지만 크라프트 박스까지는 정한 듯 하다.


로고는 아직 꿈도 못 꾼다. 너무 어려워서.






지난 마케터 세월을 돌아보면, 처음 시작은 무조건 상상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키워드들이 무엇인지를 살폈고, 그 다음부터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이를 설명할 만한 레퍼런스 이미지들을 찾아내곤 했다. 안타깝게도 못 찾아낼때도 있지만, 아주 운좋게는 한방에 여러개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림을 보고 나면 비로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좀 더 새롭고 advanced 된 느낌을 추구한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 내 분야에 적용을 시켜 디벨롭도 가능하다.


중요한 건,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해야하고, 비로소 공감했을 때 그것이 브랜딩이 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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