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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Aug 02. 2016

사랑은 뒷문으로 왔다.

사랑은 뒷문으로 왔다.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면 너는 뒷문으로 기척 없이 들어와
내 뒤통수를 때리고 달아났다.



얼이 빠진 채 겨울을 났다.
계절 감각을 상실한 철새 한 마리가 앞마당으로 날아와 동상이 되었다.
한해살이풀의 짧은 인생이 고요하게 끝났다.
시작됐는 줄도 몰랐는데 끝난 것들이 많았다.
끝은 알아도 시작은 몰랐다. 언제나 그랬다.
날이 춥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문득 입 밖으로 소리내어 말했을 때,

몇 달 동안 입을 열지 않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 끝에서 하얀 꽃이 피어올랐을 때,

계절이 바뀐 것을 알았다.
온 줄도 몰랐는데 간 것들이 많았다.
만남은 몰라도 이별은 알았다. 언제나 그랬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지 않고도
이따금씩 생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귀를 닫고, 방문을 잠그고
한해살이풀과 철새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꽃이 피었다는 얘기가 풍문처럼 들리고
뒷문에 쌓여 있던 잔설이 녹을 무렵, 무심히 



사랑이었구나, 
생각했다.



눈이 소리 없이 쌓이듯 
너도 소리 없이 쌓이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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