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얘기만 한 달째
우리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선'들이 있다.
책상과 의자 아래 얽히고설켜있는 전자 기기의 선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의 전선들, 나라와 나라를 구분하는 국경선들,
네게 오래전 빌려주었던 책 속에서 발견한 연두색 밑줄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비가시적인 '선'이 있다.
이 선은 다른 선들과 달리 눈에 보이지도, 민질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업 앤 다운 게임을 하듯 임의의 액션을 취한 후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고
상대방이 내게 보내는 유의미한 신호들을 해석하면서 내게 허용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한다.
관계의 난항은 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는 밟는 순간 일말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아웃을 외치고
누군가는 삼세번 묵인하고
누군가는 말없이 등을 돌린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꺼이 룰을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선 안쪽으로 잡아당긴다.
이곳에서 함께 궁리해보자고,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보자고.
큰일을 치르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나와 너'에서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선을 넘어야 한다.
진정한 관계는 선을 넘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선을 넘나들어야 한다.
선의 안쪽을 허용 받은 자들 때문에 분노하고
선 밖에 있는 자들과 웃으면서 안부를 나누고
때론 진심과 거짓 사이를 침범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우리라는 이름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