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난 후엔 늘 30분이 더 걸리는 길로 집에 왔다. 입김이 배꽃처럼 피어오르는 겨울에도 그랬고, 가만 있어도 운동장 열 바퀴를 돈 것처럼 땀이 쏟아지는 한여름에도 그랬다. 그 길목에서 파는 붕어빵이나 떡볶이 따위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고, 매일 얼굴을 봐서 딱히 할 말이 없는데도 매일 같이 있고 싶은 친구와 좀 더 오래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끝난 후엔 늘 20분이 더 걸리는 노선으로 집에 왔다. 1호선은 붐비니까 3호선을 타자는 선배의 권유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고작 다섯 정거장이라도 좋으니 만원 지하철 안에서 함께 흔들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섯 정거장을 지나 스물세 개의 정거장을 홀로 흔들리는 동안만 나는 선배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쩌다 조심히 들어가라는 문자가 오면 지하철이 정지했다. 지진이 났다. 하늘이 무너졌다. 지구가 자전을 멈추기도 했다.
고작 다섯 정거장. 다섯 뼘만큼 어렸던 그때의 낭만.
돌이켜보면 나는 길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나의 길은 낭비로 통한다. 그리고 길 위에서 모든 것을 탕진하는 동안 나는 알게 되었다. 혼자 걷는 지름길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에움길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걸.
너와 함께 걷는 동안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되었다. 겨우내 심은 입김은 이듬해 봄이 되자 꽃으로 피어났다. 네 손을 잡으면 꽃잎은 흐드러지고, 머리 위를 순회하는 별들... 별들.
본래 낭비는 낭만의 동의어다. 낭비하자,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