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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Apr 26. 2020

1인분의 주말

그저 그런 날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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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마요, 내 사랑.

그저 그런 날도 있는 거예요.




#

1인분의 주말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의 내가 어제와 같듯 내일의 나 역시도 오늘과 같으리란걸.




나는 그대로다.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 내 인생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다. 놀라울 만큼 그대로다.




여전히 주말이면 혼자 커피를 마시고,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산책을 하다가 볕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잠시 네 생각에 골몰한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1인분의 요리를 만든다. 식사를 마친 후엔 친구가 보내준 영화를 보고,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때쯤이면 눈을 꿈벅이면서 천오백이십 번쯤 반복한 결심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내일은 반드시 누군가와 마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네 생각을 하는 대신 내 옆자리에 앉아 내게 커피를 건네는 사람과 긴 대화를 나누겠다고. 1인분의 요리 대신 2인분의 요리를 만들고, 식사를 마친 후엔 엊그제 본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잠 속으로 침잠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일도 나는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익숙한 거리를 배회하다가 혼자 저녁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다가 졸음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쓴 채 똑같은 결심을 반복하리란걸. 내일의 나는 여전히 오늘의 나와 같고, 내일의 나 역시 어제의 변주일 수밖에 없다는 걸.




내일도 오늘 같으리란 것.

내일도 여전히 오늘의 결심을 반복하면서 희망과 절망 사이의 간극에 안주하리란 것.

그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 하고 때론 안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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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익사하고 있는데

너는 물을 설명하고 있어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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