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오늘도 역시 뉴스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관련 문제들로 도배되고 있다. JTBC의 충격적인 첫 보도 이후 두 달이 지났으나, 여러 의혹들은 커져만 가고 있다. 박근혜는 3번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한 적 없다는 말로 본인의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결국 탄핵안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다가 우리의 정치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이번 사건은 국민들에게 박근혜와 최순실의 일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막 내리게 된다면, 특검을 통해 박근혜 및 최순실 일가가 잘못한 만큼 처벌받게 된다면, 우리는 역사적인 승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일까. 또한 우리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시민에게 봉사하려고 노력한다. 또는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성을 잣대로 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이는 박근혜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과연 박근혜는 진정성이 없는 대통령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박근혜는 유시민의 말마따나 지독한 나르시시즘과 무능,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정성은 이것과 다른 영역이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시민을 위한 진정성이라고 굳게 믿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무능하고 무지하지만 진정성 있게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는 것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는 여러모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했으나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박근혜라는 실패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이는 진정성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프로페셔널이다. 파도미(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라고 불리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혼외자가 있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도록 한 것은 우리 정치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채동욱은 굉장히 유능한 검사로 알려져 있고, 실제 그러한 유능함을 전두환 추징금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외자가 있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검찰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에 혼외자의 존재 여부가 어떤 문제가 될까? 불법이나 편법의 영역이 아닌 사생활에서의 문제는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보직의 수행에 문제가 될 요소는 아니다. 그리고 채동욱의 혼외자가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지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검찰총장의 업무수행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이 지점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직을 누가 더 잘 수행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더라면,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보여준 박근혜의 베이비 토크가 단순명료한 화법으로 포장된다거나, 지나치게 느린 반응과 판단을 숙고하는 습관으로 오해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앤드류 포터가 말하는 진정성의 허구를 알아야 할 때이다. 시민들이 정치에서 진정성을 원할수록 거짓된 진정성이나 비틀어진 진정성이 정치에 판 칠 것이다. 국밥대통령 이명박이 대기업의 법인세를 크게 감면해준 것과 같은 거짓된 진정성이나, 박근혜의 무능과 무지에서 비롯한 비틀어진 진정성 같은 것들 말이다.
더 이상 정치인에게 진정성을 요구하지 말자. 정치는 성역이 아니다. 정치는 성직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 정치인이 한다. 우리는 프로 정치인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하게 맡은 바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면 된다. 편법과 불법에서 자유롭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더 선진적인 정치를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