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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soo Jung Jan 19. 2017

혼자 고기를 먹는 일

혼고기 경험담


  혼자하기 분야에 나는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재능충이랄까. 혼자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는 것, 여행을 가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편한 일이다. 딱히 타인의 시선에 무심한 편은 아닌데, 혼자 하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가끔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외로움과 두려움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나, 예능에서 혼자하기에 대해 꽤나 자주 그려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극복하고 경험해봐야 할 일종의 과제처럼 인식되나 보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자하기 레벨’ 같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혼고기(혼자 고기를 먹는 것)를 감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딱히 혼자 고기를 먹을 이유는 없었다. 단지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먹는 것이 주는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호승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마치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


  혼고기를 하러 가는 것에는 간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근처에 마실 나온듯한 복장은 필수다. 지나치게 허름하면 불쌍해 보일 수 있고, 지나치게 말끔하면 마치 데이트에서 바람맞은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맨투맨 티셔츠와 블랙진, 그런대로 이름 있는 브랜드의 패딩으로 무장했다. 


  다음으로는 적당한 고깃집을 물색해야 한다. 여기서 적당한 고깃집이란 사람이 지나치게 많지 않아서 혼자 고기 먹는 것이 주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손님이 있어서 혼자 고기를 먹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직면하게 해줄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집 근처의 십원집이라는 곳을 택했다. 십원집은 나름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맛으로 적당히 유명한 프랜차이즈 고깃집이다. 그곳은 테이블이 7~8개 정도 있는 곳인데, 창문 너머로 4개의 테이블에 사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장으로 들어섰다. 


  또 하나 혼고기에 필요한 것은 여유 있는 태도이다. 단언컨대 혼고기를 할 때 가장 힘겨운 것은, 고깃집에 문을 열고 혼자 들어서는 것과 들어서자마자 주인이 몇 분이시냐고 물어볼 때 혼자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혼고기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 듯 한 표정과 적당히 느린 말투로 주인의 응대에 답했다. “혼자 왔어요. 파불고기 두 개랑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말이다.


  또한 혼자인데 괜찮은지 물어보는 예의 따위는, 기껏 꾸며놓은 당당함에 흠집을 주니까 무시했다. 고기를 먹는 와중에 휴대폰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기에, 더욱 당당하기 위해서 주로 TV를 시청했다. 가끔씩 주인이나 옆 테이블의 손님을 쳐다보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뉘앙스를 적절히 풍겨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첫 혼자 고기 먹기는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끝가지 자연스럽고 당당해 보이기 위한 행동들뿐이었다. 혼자하기 분야의 재능충임에도 나는 사실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러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나름대로 무탈하게 나름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아마도 다신 혼자 고기를 먹지 않을 것 같다. 혼자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달리,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눈치도 보이고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외로움과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해냈다는 소소한 승리감과 성취감을 얻었고,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뻔뻔함도 적당히 길러진 것 같았다. 또한 작은 일이지만 용기를 내어 행했다는 것도 나를 만족스럽게 했다. 좋은 한 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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