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ngsoo Jung Mar 14. 2017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움

시크한 독거 작가 사노 요코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운 건 순리에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 헌법과 법률에 비추어보았을 때 위법하다면 처벌을 받는 것이 순리다. 그리고 죽음을 마주했을 때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또한, 때에 따라서는 순리이다. 


  최근 헌재의 결정에 의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탄핵 인용의 주된 요인이었다. 판결문의 앞부분에서 헌법 재판관들은 여러 탄핵 소추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에 판결문의 백미를 숨겨두었다. 80%의 시민들은 한편의 법정 드라마를 시청했고, 그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헌재의 결정에 의해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은 헌재의 탄핵 인용이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는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발언으로 탄핵에 승복하지 않음을 나타내었다. 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때 자신이 했던 발언에 정확히 반하는 것이기에, 마지막 모습까지도 아름답지 못하다. 


  암이 재발했다. 암수술을 했던 부위의 뼈까지 전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의 여생이 있음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사노 요코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일상을 산다. 선고 후 2년이 지나도 죽지 않자, 그녀는 의사에게 왜 자신이 죽지 않느냐며 이미 돈을 다 써버렸다는 농담 섞인 투정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노 요코의 ‘죽음이 뭐라고’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책에는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있지만, 그것은 삶 철학과 다를 바 없다. 죽기 전날이 그간 살아온 날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죽기 전까지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녀만의 철학이고 아름다움이다. 


  나는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인지했던 첫 순간부터 나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모든 일에 후회를 하거나 미련을 갖지 않는 편인데, 그러한 성격이 반영되어서일까. 죽음이 아쉽지 않다. 당장 죽어도 딱히 상관은 없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없다. 죽을 이유가 없으니까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이 책의 원제는 ‘죽을 의욕 가득’이라고 한다. 되게 잘 맞는 제목이다. 한국판의 제목인 ‘죽는 게 뭐라고’ 만큼이나 적절하다. 사노 요코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탄핵되는 게 뭐라고, 나 죽을 의욕 가득 이야.”라고 입을 삐쭉대며 하는 말이 귓등을 간질이는 것 같다. 아 물론 기분 탓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성 있는 정치는 좀 그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