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노트북을 넣고, 연습장과 펜을 들자

by 마이티북스

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잘 모른다. 비문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보다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확신에 찬 단언이 불편하리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긁혔다면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은 사실이다. 전(前) 국립국어연구원 원장도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다고 신문에서 인터뷰한 기록이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는 붙여 쓰지만, ‘토끼 고기’는 띄어 쓰고, ‘큰돈’은 붙여 쓰지만, ‘작은 돈’은 띄어 써야 한다.

(2013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 신문기사 인용)


이런 어려움에 대해 여러분은 지금 당장 단 한 차례의 검색 없이 온전한 자신의 지식만으로 설명해줄 수가 있는가? 아마 다수가 얼굴을 붉히리라 본다.


그렇다고 해서 기가 죽을 것도 없고, 내게 욕을 할 문제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 국어가 어렵다는 말이고, 우리 문법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자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난 그저 우리가 현재 글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앞서 ‘매일쓰기’가 긍정적인 단면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매일쓰기는 엄청난 과제이며, 여러 부작용을 야기하게 한다. 그런 부작용 중 하나가 일단 당장 노트북부터 꺼내서 글을 쓰게 만든다는 거다. 정말, 난감하다.


물론,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데스크톱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기는 하다. 한글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초벌을 쓰고 있고, 다 쓴 이후에는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본 후, 브런치에 예약 글로 등록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정말 쉽게 쓴 글을 단순한 자기 검열 이후에 웹에 바로 발표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런 단순한 과정이 웹 문화와 관련 산업을 발전시킨 건 맞지만, 다수의 글쓰기를 망쳐 버린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게 맞춤법 검사기,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존이다. 지금 현재도 프로그램 내에서는 내가 쓴 몇몇 단어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얼마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런 빨간 줄이 매우 의식되기 마련이다. 빠르게 생각을 전개하여 글을 쓰기 편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리는 것인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 거다. 생각은 전개되지 못한 채 빨간 줄에만 시선이 꽂히게 된다. 급기야 그대로 써도 되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표현을 끌어와 우회하게 된다. 결국에는 그게 그 사람의 문체로 굳어 버리기까지 한다.

혹자들은 그래서 자신은 어디 사이트 검사기를 애용하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반 소프트웨어보다 정확하다는 이유에서다. 미안하지만, 그건 전혀 옳은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하게는 소프트웨어의 설정을 명확히 다루지 못해서고, 궁극적으로는 왜 빨간 줄이 뜨는지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나무라는 게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문제다. 제대로 알고 바로잡으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 줄이 그어진 대상을 틀린 것으로 인식한다. 아무래도 그간 받은 우리의 교육 문화 덕분일 테다. 틀린 건 가차 없이 줄이 그어지고, 정답만 챙기는 문화 말이다. 소프트웨어에서 빨간 줄을 그어주는 건 틀려서 긋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확인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문제다. 틀린 건 죄다 뜯어고쳐야 하지만, 맞는 건 확인 후 그대로 두면 된다. 다음의 예문을 살펴보자.


온라인을 통한 배움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온라인학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한 배움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학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둘 중 어떤 게 맞는 표현일까? 일반 명사와 일반 명사는 기본적으로 띄어쓰기가 원칙이지만, 여기서는 둘 모두 맞는 표현이다. ‘글의 전체적인 문맥상’ 온라인학교를 고유명사처럼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붙여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이 오래도록 많이 사용하여 고유명사로 인식되어서다.


그 일은 할만하다.

그 일은 할 만하다.


위 표현은 어떨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조 용언 띄어쓰기와 예외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만하다’는 보조 용언으로 띄어 써야 하지만, 본용언이 ‘할, 갈, 볼’인 경우에는 예외로 붙여 쓰기가 가능하다. 그러니 이 또한 모두 맞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소프트웨어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도 예외의 경우가 갱신되는 만큼, 소프트웨어도 사용자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건 여러분이 어떤 사이트를 이용하든지 동일하다. 각 사이트마다 적용 기준이 미묘하게 달라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과 안 그어지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 또한 사이트나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달라질 문제다.


ex.jpg 맞춤법 검사와 관련된 세부설정 가능. 다수의 이용자가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때문에 맞춤법이나 문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빨간 줄에 더욱 민감해 진다.



고정관념 덕에 형성된 본능은 우리로 하여금 빨간 줄을 일단 피하게 만든다. 왜 줄이 그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프로그램이 전부 자세히 알려주는 게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빨간 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검색을 하고, 그 지식이 머리에 고스란히 남아준다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때문에 글이 처음 의도대로 써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한다. 생각이 떠오를 때 빠르게 전개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지만, 오히려 발목이 잡혀버린 거다. 쓸데없이 빨간 줄 앞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무심하게 빨간 줄을 죄다 무시해도 문제다. 결국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은 글은 독자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른 적절한 해결책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권한다. 노트북 전원을 켜지 말라는 말이다. 종이를 꺼내 펜으로 직접 옮겨 적는 시간을 가져보다. 글쓰기에서 자신감을 얻고, 충분히 즐겨보기 위해서는 적은 분량이라도 나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낸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방해받지 말고 완성부터 해보자. 펜과 종이에는 빨간 줄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 건 초벌 완성 후, 직접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옮겨 적어보면 된다. 번거롭더라도 공정을 나눠보자는 말이다.


번거로워 보이는 노동이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우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빨간 줄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개할 수 있다는 최장점이 있다. 다음으로는 노트북에 바로 쓸 때보다 문장을 한 차례 더 곱씹게 된다는 점이다. 타자가 빠른 사람들은 생각의 연상과 함께 거의 비슷한 속도로 활자가 채워진다. 그렇게 쓰인 문장은 되감겨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반면, 근육을 직접 움직여서 손으로 쓰는 문장은 더디다. 생각의 속도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한다.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동안에도 속으로 읽고, 쓰고 나서도 읽게 된다. 문장의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의 전개가 첫 번째고, 문장표현을 다듬는 건 두 번째고, 맞춤법 검수는 최종이다. 이걸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기 위해서 노트북 전원은 우선 꺼두길 바란다. 노트북은 흔들림이 없어진 다음에 켜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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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은 앞서 전작인 『장르불문 관통하는 글쓰기 – 기본 이론편』에서도 다루었던 내용이지만,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위해 다시 한 차례 남겼음을 밝혀둔다.






전작인 《장르불문 관통하는 글쓰기 기본 이론편》은

온라인 서점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을 통해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판매되고 있으며,

오프라인은 전국 교보문고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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