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Apr 06. 2024

내 꿈을 미워하지만 말아줘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안녕하세요? 엄마 딸 유녕이에요. 

엄마께 크리스마스 카드 드린 후, 다시 편지를 드리네요.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편지를 쓰게 됐어요. 

엄마께 편지를 드릴 때는 항상 존댓말을 썼는데, 

이 다음부터는 구어체로 쓸게요. 그래야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 제대로 나올 것 같아요. 


엄마, 있잖아. 나 요즘 머리가 자꾸 아프잖아. 

단순한 건강 문제나 취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야. 

엄마, 나 S대 대학원 모집요강이 떴는데 자기소개서를 봐도 단 한 글자도 쓰질 못하겠더라. 

내 마음이 도저히 거기로 가질 않아서. 내 꿈이 거기 없어서. 

솔직히 대학원은 내 꿈에 지금 도움이 안 되니까. 

나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 자기소개서는 뒤엎고 별 짓을 다 했어. 

그런데 대학원은 그게 안 돼, 왜? 

엄마도 느끼겠지만 그건 엄마 바람이지 내 꿈이 아니니까. 

엄마, 나도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이제 엄마의 바람보다 내 꿈이 더 소중하더라. 


엄마, 내가 아무리 엄마 딸이라도 나는 결국 엄마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바람을 백프로 이뤄줄 수 없어. 

엄마가 내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없듯이. 

엄마가 이렇게 안 되면 하나님이 공부하라는 뜻 아니냐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보기엔 하나님도 내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자기소개서를 단 한 글자도 못 쓰겠는 일을 하긴 원하지 않으실 거야. 

내 친구 A/B처럼 진정 대학원을 원해서 가는 친구들도 힘들어하는 길인데, 

내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고 대학원에 지금 가면 

내 영혼이 죽은 채로 살 것 같아. 그리고 죽음 앞에서 눈을 감을 때 후회하겠지.


“진짜로 내가 원하는 PD 일을 제대로 해봤어야 했는데.”


난 그때 엄마를 원망하느니, 지금 불효를 저지를께. 


그럼 엄마는 묻겠지. 그 정도로 그 일과 꿈이 소중해? 

그럼 난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거야. 응, 엄마. 

나에게는 2019년부터 이 일을 꿈꾸고 도전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어.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정말 이 모든 걸 겪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PD가 되고 싶어?”


엄마, 그런데 그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내 대답이 ‘No’였던 적은 없어. 

언제나 ‘Yes’였어. 그래서 어떨 때는 내 자신이 좀 징그럽더라, 엄마. 

그런데 내가 좋은 드라마/콘텐츠를 만들고 세상에 기쁨과 감동을 주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크더라. 

내가 <연애남매>를 보며 웃고, 

<더글로리>를 보며 우는 그 감정이 소중해서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더라.

엄마, 좋은 대학 나와서 비슷한 대학원 가고 해외 유학 가서 교수 되는 길이 

엄마와 우리 집에서 당연하고 안전한 선택이었던 거 알아.

아빠, 언니, C오빠, D언니네 다 그랬으니까.

그런데 엄마, 나한테는 그게 당연하지 않더라고. 

교수 되려면 문과는 박사까지 8년은 기본으로 걸리는데, 그건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더라. 

그렇게 대학원을 가고 교수가 되어도 내가 행복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엄마, 난 영상과 좋은 드라마화 소재를 찾아내고 만들 때 정말 행복해. 

그런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면, 난 지금 이 고난은 견딜 수 있어. 


엄마, 내 꿈을 응원해달라는 말은 안 할게. 

원한다면 번역 알바든 뭐든해서 내 생활비를 벌게. 

그냥…너무나 간절한 내 꿈을 부정하지만 말아줘. 

난 엄마가 그럴 때마다 너무 맘이 아파. 내 안의 무언가가 죽어가는 기분이야. 

올해 안에 원하는 곳에 취직이 안 되면, 실무 아카데미를 한번 알아볼게.

그러니 한번만…내 결정을 믿어줘. 

망해도 내가 내 꿈과 망해보고, 해도 내가 책임지고 해 볼게. 

그러니 엄마, 너무 날 걱정하고 애쓰지 말고 그냥 지켜봐줘. 

엄마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신경써줘. 

맛있는 것도 더 챙겨먹고, 예쁜 것도 더 보고, 좋은 곳 산책도 더 하자. 

난 나보다 엄마가 스스로를 더 사랑했음 좋겠어. 

그치만 엄마, 나도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해.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 


- 엄마 딸, 유녕이가.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