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 합리적인 개인주의자 백승수
“이것은 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포스터에 있는 문구다. 야구 드라마에서 말 같지 않은 말 같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스토브리그>는 지금까지의 한국 스포츠 영화/드라마와는 결이 다르다. 기획의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야구 드라마이자 오피스 드라마, 그리고 전쟁 드라마다. 즉, <스토브리그>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와 동료가 관성에 젖은 집단을 바꾸어나가는 이야기다.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은 흔히 생각하는 영웅형 캐릭터는 아니다. 비슷한 캐릭터를 찾는다면 <비밀의 숲>에서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원칙주의자 황시목 검사에 가깝다. 그는 정의를 부르짖는 대신 논리로 원칙을 되찾는다. 그래서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와 갈등하게 되는 캐릭터들은 단순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다. 드림즈의 스타 선수 임동규,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 구단주 대행 권경민이 백승수를 막아서면서 찾는 논리는 ‘순리’다. 만년 꼴찌 팀인 드림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드림즈는 원래 그렇다”라는 말을 내세운다. 그 말을 통해 누군가는 스타 선수의 자리를, 누군가는 본사 재송 그룹에서의 출세를 꿈꾼다. 이 상황에서 백승수의 역할은 이들의 순리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백승수는 동료들을 만난다. 백승수가 아무리 능력 있는 단장이라 할지라도 드림즈를 혼자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동료는 백승수의 친동생 백영수다. 장애를 가진 동생에게 죄책감이 남아 있는 백승수는 야구 이야기를 동생 앞에서 쉽게 꺼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야구 선수를 꿈꾸었던 백영수가 여전히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 통계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백영수가 드림즈 전략분석팀 공개채용에 지원한 일은 곧 형과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백영수가 백승수에게 “난 이제 빠져나왔는데, 형은 왜 거기서 나를 보는데”라 외치는 것은, 장애인에게 사고 이후의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트라우마가 있을 지라도, 6 센티미터의 턱에 가로막힐지라도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로빈슨’ 백영수의 모습은 한국 드라마에서 매우 귀하다.
백승수는 사람이 아닌 순리와 싸우기에 적이 동료로 변하기도 한다. 스타 선수로 군림하던 임동규는 바이킹즈에 가서도 드림즈와의 추억을 간직했고, 드림즈 사인볼을 버리려고 했던 권영민은 결국 드림즈 매각을 돕는다. <스토브리그>는 선수는 선하고 프런트는 악하게 그려졌던 기존 스포츠 드라마들을 답습하지 않는다. 주연이 아닐 지라도, 각 캐릭터들이 가진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백승수가 드림즈에서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느 구석에서는 약자이기에,
‘약자이면서도 관성에 저항하는 악귀’의 활약을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