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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Feb 12. 2022

앞머리 롤과 집에서 입는 편한 옷

결과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읽기

한번씩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보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지하철이나 길거리서 보는 앞머리 롤을 한 소녀들이다. 누군가가 당신 앞에서 앞머리를 롤로 말아뒀다면 당신은 아름답게 자리잡힌 앞머리를 보여줄 대상이 아닌 거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아하! 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도 잘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결국은 자유로운 시선이 결국은 또 다른 시선을 위한 거라면, 하는 의구심이 저 한편에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아참, 물론 내가 앞머리가 없는 사람인 건 고려하고 들어야 하는 얘기이긴 하다.


얼마 전에 읽은  <그래서 한국인> 한국인의 주거공간, 과거 한옥을 기반으로 한국인의 특성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뻔한 이야기를 하지 싶어서 팔짱을 끼고선 읽기 시작했지만 읽다보면서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 결국은 재미있게 읽을  있었다. 예를 들면, 한옥이라는 공간이 거기서 상을 펴서 밥을 먹으면 다이닝룸, 거기서 이불을 펴면 잠자리, 공부를 하면 공부방이 되듯 시퀀스에 따라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바꿀  있기 때문에 맥락에 맞지 않는 것이  튀어나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 그리고 빨리빨리 넘어가야 한다는 , 그리고 집이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이 집으로 오는 과정이 거실이 있는 서양에서보다  번거로운 일이 된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꺼낸  이번에 한국에 가서    집에 하루 묶을 초대를 받아 갔을  제일 먼저 들은 , 신기하게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게 줄까?"라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조여진 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고, 편한 니트나 맨투맨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을 뿐인데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니. 나도 한국에서  기간이 있어 아주 맥락을 모르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떠나  기간 동안 내가 만든 리츄얼이 있어 갑자기 낯설  느껴졌다.


내가 해외에 살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외로 집 깊숙이까지 들어가 친밀하게 하나하나 알게 된 기회를 가진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 중 하나가 이제는 내 절친이 된 집주인 내외다. 이 분들은 하루 종일 별다른 스케쥴이 없어도 아침마다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하루를 시작하신다. 침실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 분들에게는 밖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시간에 찾아가도 이 분들은 망설임 없이 대문을 열어주시고 언제든 깔끔한 모습으로 날 맞이하신다. 이 분들이 수면바지 차림이거나 파자마 차림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물론 학생들을 만나면 트레이닝 바지에 누추한 꼬라지로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이런 게 신기할 법도 했다. 암튼 이 분들의 항상 차려입고 있는 모습이 신선해서 그 다음으로 만난, 소위 성인들 집에 찾아갈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평상복을 입고 집에서 하루를 보내더라고. 한번은 지금은 루게릭 병에 걸린, 과거 의사셨던, 혼자 사는 할아버지에게 자전거 수리 도움을 받았고 고마움의 표시로 와인을 사다 드리러 갔는데, 갑자기 찾아갔는데도 셔츠에 예쁜 스웨터를 입고 나오신 걸 보고 뭔가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하고 온 적도 있다.


물론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접근이 다른 것도 있겠지만, 내가 여기서 읽은 건 이거다: 나는 침대 밖으로 나오면서 누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누가 보든 안 보든 준비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래서 거의 맨날 재택근무를 하지만 회사 가는 것처럼 씻기는 열심히 씻는다. 옷도 일부러 갈아입는다. 실제로 나갈 때 입는 옷보다는 편한 바지를 고르고 화장도 잘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준비를 한다. 별일 없는 주말에는 주말 느낌의 편하지만 발랄한 평상복을 입기도 한다. 누가 보면 그냥 업타이트한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대하고 싶다. 집에 오면 내가 편안하길 바라는 초대해준 사람들의 마음도 고맙고 따뜻하지만, 우선은 그렇게까지 불편한 코르셋은 안에서든 밖에서든 최대한 조이지 말자는 생각이 하나, 그대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일할 때의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


나는 어떤 꼭짓점에 있는 순간도 물론 좋지만 그곳에 이르는 과정에도 애정을 주고 싶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 탱탱하게 볼륨감 있어야 하는 앞머리를 위해 계속 롤에 말려있는 긴 시간이 나라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전형적인 꼰대의 이야기라 망설였지만 어차피 잘 안 들리는 목소리일테니 우선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게 결국은 내 마음 한켠에 아직도 있는 작은 트리거이기도 해서다. 모든 교육과정이 수능을 위한 지난한 연마와 기다림이고 4년의 대학과정이 결국은 취업을 위한 달리기인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버티고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서다. 고작 앞머리 롤에서 너무 많은 걸 읽어내려고 한대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또 앞머리롤 소녀들을 마주하게 될 때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가지 않듯 빤히 쳐다보지 않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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