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음 주의 (칸이 있으면 채워야 하는 사람의 소제목)
고스톱 용어긴 하지만 인생의 다른 부분이 자유로웠으면 해서 직업만큼은 굳은자였으면 했었다.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비자나 예상치 못한 해고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혹시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어렵지 않은 직장. 대신 업무 강도는 높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 계발 없이도 계약한 근로시간만 잘 지키면 일 인분의 노동력으로 큰 문제가 없는 그런 상태. 물론 거기서 더 잘하고 싶거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지는 건 그저 덤이다. 평온함을 찾아왔던 지금 조직에서 이런저런 소용돌이와 불편함을 겪으면서, 내가 기대했던 평온함은 내가 보이지 않는 부품으로써의 노동력을 담당할 때만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존재가 보이려고 하면 자기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 내 상사 말고는 아무도 내가 1.5년 이내에 지금 부서를 떠나고 싶어 하는 걸 모른다 (나는 1년 내에 떠나고 싶은데 상사는 1.5년으로 마음을 정한 듯하다). 다들 내가 떠날 사람인 걸 알면 서로 잘 협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 이용해서 마무리하고 싶어 할 텐데... 말이 심하게 잘 도는 조직이라 이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생활하느라 더 피곤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위험관리가 업무인 사람에게 요즘과 같은 도처에 깔린 위험 상황은 매일매일이 비상이다.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다른 팀은 거의 2개월째 비상모드로 주말에도 일한다. 그래도 2-3주 휴가는 취소하지 않는 게 또 이곳의 장점. 내가 하는 업무에 정말 큰 힘이 되어 주는 두 명이 Reha (영어로는 rehab인데 무슨 중독은 아니고 공보험에서 지원해주는 재활프로그램)에 한 달씩 들어가게 되어 이 모진 공간에 혼자 남아 나쁜 아저씨들과 5월 말까지 싸워내야 한다.
무언가를 피해 떠나온 곳에서 다시 그 무언가를 마주한다는 게 이상하고 재밌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싫어하는데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사실 이직은 일이 지겨운 것보다 사람이 지겨울 때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되는데, 갈등이 없는 곳이 없으니 떠나온 곳에 천국은 없는 셈이다. 지금 퀘스트는 여러모로 강인한 직업인이 되는 거다. 물렁물렁한 내가 좋았는데, 내 걸 지키는 것보단 말이 되는 일을 하고 논리가 우선시 되는 자리에 있고 싶었는데, 이렇게 피해 다니다 보니 유리멘탈이 된 나만 남은 것 같다.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이 과정을 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5년 후에 ㅈㄲ하며 멋지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게 잘 수련해보기로 하면서.
파리에 다녀왔다. 왜 그동안 파리를 여행지로 고려하지 않았을까. 한 번 대학 친구들과 정신없게 다녀온 걸 제외하고는 파리에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신기한 건 내가 고작 피케티 책 한 권을 읽은 후 이곳에서 석사를 할 뻔했던 건데, 나 참 생각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아름답고 현란한 도시, 챙길 건 다 챙기고선 멈춰있기를 선택한 도시,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도시. 문화유산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로마와 비슷해도, 지금에도 새로운 무언가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는 건 매우 다른 점. 물론 그 새로운 무언가가 결국 과거의 것을 재생산해내는 데 멈춰있고, 여전히 그걸 소비하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있고, 업데이트가 안된 채로 있어도 "파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덮어놓고 사랑해주는 지지층이 있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굳이 따지지 않고 여행지로만 보자면 맛과 멋이 있으니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패션이라고는 0에 가까운 곳에서 살다 보니 한 번씩 눈이 즐겁게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는 경험은 신선하고 좋다. 맛을 즐기고 싶을 때 옵션이 넘쳐나는 것도 가끔은 좋을 것 같다. 디렉토리형 인간은 아니지만 한 번씩 땡길 때 열어볼 폴더가 있다는 점에서 파리는 자주는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을 듯하다. 이모저모로 안전하게 테일러해서 좋은 기억들을 가져오게 도와준 가이드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다녀왔더니 내 집, 근처 슈퍼마켓, 동네 빵집 같은 게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곳도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가 이 도시에 대해 물어보면 쉽게 장점을 늘어놓지 못하게 되는데, 내가 이곳의 장점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아무래도 이 도시에 국한된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내 요새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내 공간 또한 나에겐 굳은자네. 공간이 자꾸 움직인다는 데서 진정한 굳은자가 아니지만, 내가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이곳은 내 공식에선 언제나 상수다 (굳은자보단 상수가 더 고급진 메타포였네...).
약 한 달 간의 금주를 끝내고 파리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안주가 좋아서였는지 전혀 숙취가 없었다가, 이번 휴일에 날이 좋다고 빈 속에 밀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다가 속에 탈이 났다. 그냥 속만 탈이 난 게 아니라 얼굴에 뾰루지도 올라왔다. 아무래도 스트레스도 한 몫한 것 같다. 술이 약해지긴 했나 보다 싶으면서도, 그동안 끊임없이 마셔서 위와 장이 절어있어 몰랐던 상태라면 이렇게 깨끗해진 위와 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금주기간은 성공적이었던 걸로. 그리고 꼭 속은 채우고 술을 마시자는 다짐도 함께.
수잔 손택(수자네 존탁이라고 읽고 싶어 졌지만...)의 <Reborn>을 읽으면서 이 분 삶 참 멋지고 재밌었네 하고 있고, 헤밍웨이의 <파리 스케치>를 읽으면서 이 백남 에고 쩌네 하며 쯧쯧거리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내 일기를 보니 엄청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시함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굳은자이지 않을까 싶어 한편으로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일기마저 비교하지는 말자 하고 또 정신을 단단히 움켜쥔다.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과거를 볼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만 하더라도 고등학교의 나와 대학교 때의 나, 심지어 2년 전의 나의 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과거로부터 배울 게 아직도 많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도 얻을 게 충분히 많다.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가 쉽지 않은 문제지만, 불편함을 못 견뎌 포기해버리는 것도 위험하고 쉽게 이입되어 오류를 덮어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실패를 하려고 하는 데서 과거를 돌아보려고 한다면 적어도 어제보단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how to be perfect>를 읽/듣고 있다.
휴일이 이틀 남았다. 이제 <파친코> 드라마를 드디어 볼 때가 되었고, 21세기의 우리는 과연 그렇게 지켜내 온 삶에서 얼마나 더 나아갔는가 생각해보고 싶다. 강인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진 환경의 싸움은 언제고 영감을 준다. 더 강인한 사람들에게 더 모진 환경이 주어지는 건지, 아니면 더 모진 환경이 더 강인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나에겐 양쪽 다 힘이 되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주 많이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내 가치관의 근저엔 기독교가 있다. 사랑과 평등에 기반한 삶.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보다도, 현생의 내게 선택의 기로마다 나침반이 되어 주어서다. 희생의 아이콘 예수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불가능한 걸 알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아주 가끔 있어 크게 방향을 잃지는 않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가 아니라 이 또한 무슨 의미겠지, 하며 위기의 순간들을 이겨낸다. 그래서 부활절은 긴 주말 이외에도 기쁜 날이다. 단순히 부활이 기쁜 게 아니라 선이 승리한다는 것에 대한 위안이랄까. 이건 또 무슨 차원의 도덕적 우월감일까 싶다가도 누굴 짓눌러서 갖게 되는 우월감도 아닌데 내가 이 정도의 자기만족도 보너스로 못 챙기나 싶어 굳이 숨기지 않으련다. 토끼 초콜릿은 매년 먹는 데도 이상하다. 오늘은 동네에 있는 맛있는 도넛을 사다 디카페인 커피와 함께 오후 티타임을 가져야겠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내 토마토들은 쑥쑥 자란다. 아직 겨울 이불과 코트를 집어넣기 이른 4월 중순, 사순절도 고난이지만 역시 진짜 고난은 부활절 이후라는 말에 끄덕이며 당과 지방으로 배를 채워둬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