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참 열심히 산다’는 말을 했다. 과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어 일상을 부끄럽게 느끼는 시기에 그런 말을 들으니 참 민망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다는 자기 계발서가 한국 외환위기 시기를 전후로 서가를 채웠고, 나도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권 이상은 읽어치우곤 했던 듯하다. 세상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사람들은 보통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열심히들 산다.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성공한 광고인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이미지와 그를 위해 해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적어도 매일 하루 2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나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를 섭렵하고 있어야 하며, 해당 업무분야에 관한 전문서적도 일주일에 3~4권씩 읽어가며, 각 분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매일 다른 사람들과 몇 차에 걸친 많은 저녁 술자리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일은 야무지게 해내야 한다고 들었다.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나의 아침 시작은 그래서 늘 힘들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6시에 출근해 운동까지 마치고 7시부터 나보다 업무강도가 더 센 하루를 시작하는 대선배가 떡하니 계시니 아무리 열심히 따라 하려고 해도 늘 나의 부족함을 재확인할 뿐이고, 힘들다 넋두리하는 나는, 젊음에도 부정적인 태도에 노력과 열정이 부족해 핑계를 일삼는 열패자일 뿐이다.
회사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옷만 갈아입으러 집에 다녀오는 생활, 집에 다녀오는 1시간마저 잠이 더 아쉬워 회사 인근 사우나를 준 숙소로 삼던 시기였다. 부모님 성화에 못 이긴 맞선이었다 하나 상대를 회사 인근으로 오게 해 점심시간도 채 함께 하지 못하고 돌려보내기도 일쑤. 그런 생활도 점점 익숙해져 잦은 야근과 격일 간격 철야근무를 마치고서도 아침 운동을 하고, 그 와중에 평일에도 24시간 개방된 도서관을 찾아다닐 만큼 그야말로 ‘성공한 광고인’에 걸맞은 행동양식에 가까워졌다. 온통 모든 삶이 업무와 관련되어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늘 '다음에'를 연발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그래도 하루는 짧았다. 마치 비업무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불필요한 시간 혹은 언제나 다음으로 미뤄도 될 차순위였다.
7•4제가 적용된 회사여서 오전 회의를 마치고 그날 회의 내용으로 당일 바로 수정해야 했다. 다음날 오전 회의에 수정된 안으로 재회의를 해야 하니, 디자인팀에서 수정 작업한 것을 확인한 후 퇴근하는 일상. 당연히 광고팀은 4시에 퇴근이 가능하지 않다. 그 전날에도 야근을 한 후라 모두들 지쳐서 출력실에서 시안이 나오는 동안 늦은 저녁식사 겸 반주를 곁들이고 마무리 작업을 한다. 카피 수정 작업을 하다가 새벽 2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나?’
성공하기 위해, 남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했던 대로 나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내게 성공이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저 상대도 명확히 없으면서 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 적어도 세상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성공 기준이 사회의 그것과 같지 않고, 또 그저 갖고 싶은 선망의 대상일 뿐 그 실체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거나 소위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성공은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삶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꾸리고 싶다는 희망은 있으면서도 그 균형을 잡기 위해 타인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용기와 현명함은 갖추지 못했다. 정작 나 자신에게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 집중하지 못해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았다. 그건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살고 싶은가? 5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나와 타인으로부터 어떤 평가받기를 바라는가? 나는 어떤 만족감을, 성취감을 얻기를 바라는가? 나는 어느 순간에 행복한가? 여기서는 외부로 향한 '왜?'나 '무엇을?'과 같은 당위에 가까운 답이 나올 질문은 접고 오롯이 '나'를 중심에 두고 각자의 나를 들여다보라.
인생을 설계하기 전, 나의 하루를 계획하기 전, 나는 먼저 각자 ‘나의 성공’에 대해 새롭게 정의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에 따라 시간 배분하기 바란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시간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든지 어느 누구에게도 하루의 시간은 공평하게도 똑같다. 그럼에도 그 하루가 내게는 유독 더 짧은 것 같아 낭비하는 시간이 적기를 바라며 어떤 명목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지 묻는 아이에게 사람은 그에게 할당된 시간이 다하면 죽는, 유한한 존재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다음에 한 말을 혹 잊었을까 다시 말해주고 싶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은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배려해야 하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삶을 계획하며 살아야 한다. 나에게 할당된 유한한 시간,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감을 느껴야 삶이 의미있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