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출판업을 하는 분을 의외의 공간에서 만났다. 그분 역시 강남의 모임에서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나 보다. 소개자가 인사하고 자리를 옮기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내게 그 출판사에서 이번에 출간한 신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심정을 이해하는 바여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너무 읽지 않아 책도 팔리지 않으니 출판업이 사업이 아니라 사회 환원 차원에서 하는 사회사업이 되었다 말한다. 사명감으로 하는 일이라면서도, 그 출판사는 저자와 계약한 지 10년 만에 원고를 받아 작업한 이번 신간에 3억 8천만 원이라는 비용을 들였다 한다. 기껏 400부 남짓 팔릴 철학에 관한 인문서였다. 그럼에도 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에 책 만드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했다. 나 역시 인문서 출간 작업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입장이라 그분의 현재가 그리 특별할 일이 아니었으나 그 지난한 과정을 지금까지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그 힘만은 새삼 부러웠다.
그분은 또 다른 사업을 통해 크게 부를 일군 경험도 있어서 소위 성공했다는 친구들과 자주 어울릴 일이 있다 했다. 그때마다 나누는 이야기라는 것이 빈천하여 '잘 나가는 주변 사람들'과 '돈'에 관한 것뿐이라 요즘 사람들의 삶이 생각도 없이 보잘것없고 형편없다 폄하했다. 그러면서 여지없이 정치가 개판이라 세상이 더 어려워진다 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되면서 그들의 부를 더 축적하기 위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원리를 개발하고 통제한다. 인간이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으려는 영역에 '돈'으로 보상을 하고, 또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게끔 사회를 조장한다고 어느 책(암스트롱 2018)에서 읽었다. 돈 이외의 본질적 가치, 즉 보람, 만족, 의미, 존경, 행복 등이 보상으로 수반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금전적 보상이 적게 된다. 경제적 부가 인생의 성공, 인격과 동일시하도록 하여 우리의 자존감과 연결고리를 만든다. 우리 사회가 가짜 자존감을 권하고 추구하게 된 이유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하면 싶다. 내 이웃과 비교해 더 많이 가졌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욕망의 합리화다. 조금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방법은 효율적이지 않아서 더 쉬운 방법을 따랐을 뿐이다. 나는 남들보다 더 가져야 하니까.
사람은 이웃과 함께 살아야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영속성을 얻는다. 사람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공생을 위해 윤리를 가진 공동체의 일원이다. 조금 덜 수월하지만 그 가운데서 최적의 결과를 얻는 수고로움을 더하기 위해 신은 인간에게 명석한 두뇌를 준 것이 아닌가?
최근 학교와 관공서와 도서관과 평생학습관 등을 돌아보며 느낀 바가 있다. 정치가 개판이라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민원인의 눈에서 살피니 뭔가 작은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문제제기를 하고서 개선방향이 결정된 후 거시적인 변화가 일반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세상에는 더 나은 길을 찾고, 갈 방향을 결정하고서 느리지만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시민이 많은 것 같다는 희망.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제되지 않는 인성을 갖추고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재벌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 좌절도 느끼지만, 분명한 건 우리의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 많은 시민들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느 순간이 오더라도 내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희망의 징검다리를 놓는 선택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오늘의 나를 바꿔나가려고 노력하는 당신, 혼자라서 지친다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라. 오랜 시간 가야 할 그 길에 함께하는 또 다른 당신과 눈이 마주칠 것이다. 우린 그렇게 서로 응원하며 내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