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Oct 15. 2021

안녕, 내 집!

돌고 돌아 가방

고향으로


에어컨이 없는 이태원 반지하방의 지열을 걱정하며 아는 누나와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 지난 5월이었는데, 벌써 골목을 쓸어내는 바람이 건물 외벽을 차게 식히고 집 안의 장판을 서늘하게 훑고 가는 계절이 되었다. 5개월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것을 쏟아부었고, 가끔은 (실은 꽤나 자주, 아니 거의 매일)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했다. 출발선에 선 각자의 입장은 조금 달랐지만 일을 되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처음 생각했던 과는 많이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추석 연휴 동안 누나도, 도 꽤나 많은 고민을 했고, 긴 대화 끝에 우리의 동행은 끝을 맺었다.


참 멀리 돌아왔다. 지금의 시국을 기점으로 한다면 근 1년 반이 되었으니 그때 논산 훈련소의 입소대대에 있던 친구들도 이미 아저씨 소리를 듣고 있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나 먼 길을 돌아서 나는 다시 가방을 만들기 위해 불과 다섯 달 전에 이별을 했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더 넓은 방에 살게 되었다. 볕은 여전히 잘 들고, 익숙한 공기에는 아늑함이 있다. 주소지까지 옮기고 나니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마음이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안 되는 이유를 만들고자 마음먹으면 끝이 없다. 그리고 대체로 그 '안 되는 이유'들은 조금 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더 합리적인 사고의 귀결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부지런을 떨어보려고 한다. 이래나 저래나 내가 지금까지 찍어온 방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연속이었으니깐. 나는 앞으로도 선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내 시곗바늘은 너무 오랜 시간 멈춰있었기 때문에 태엽에 녹이 슨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 가방을 만들어야겠다.




Here comes the su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