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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May 25. 2022

어느 청년 창업가가 만든 사탕 이야기


작년 한 해, 길지는 않았지만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태원을 보금자리 삼았던 적이 있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결과다. 이 시국을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으로서, 생존을 최우선의 기치로 내걸고 이런저런 일을 좇으며 살았다. 그러던 중에 아는 누나와 함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미 사업체가 있는 사람이니 공동으로 창업을 하기에는 살짝 뭐한 감이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창업 초기의 고생스러움만 함께하는 특작부대로 합류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합류한 시점이 하필 서울 집을 정리한 직후였다. 그런 탓에 사무실 바닥에 캠핑매트 하나 펼쳐놓고 그곳을 내 집 삼아서 지냈으니, 워라벨 같은 건 애저녁에 꿈도 꾸지 못했다. 게다가 야망으로 가득한 초창기 창업가가 으레 그러하듯 누나도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일에 미쳐 살았다. 함께 시작한 것이기에 당연히 잘 되길 바랐지만 월급만 받고 일하는, 어쨌든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닌지라 주인 의식이 부족한 나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산전수전의 엑기스만을 뽑아서 들이마신 것 같이 달콤 쌉싸름했던 5개월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행의 끝이 가까워옴을 느꼈다. 2021년 9월 말,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뒤로 반년 남짓한 시간이 더 지났다. 봄기운이 만발한 2022년의 일상에는 이 시국이 끝나가는 징후가 명백하다. 여행 가방 장사꾼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행군은 머지않아 지난 시간을 딛고 도약하기 위한 뜀박질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바쁜 매일을 보내던 중, 누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건네받은 한 통의 상자.


때로는 삐걱거리고 가끔은 쉬어갈 때도 있지만 누나는 첫 발을 함께 내디뎠던 그 길을 꾸준하게 걷고 있다. 수수하지만 정성스럽게 포장한 사진 속 박스는 그 확고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누나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프로폴리스가 들어간 사탕수수캔디를 만들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먹거리 큐레이션 서비스로 시작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직접 먹을거리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사탕수수가 들어간 마카롱이겠지. 사실 나는 마카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한 사람들에게 주려고 정성을 담아 준비했을 테니 감사한 마음으로 한 입 베어 물었지만 솔직히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


마카롱은 감사한 마음 담은 사진 한 장으로 추억 속에만 남겨두기로 한다. 어차피 파는 게 아니라서 맛있었다고 한들 다시 먹어볼 방법도 딱히 없다.



어쨌든 수없이 많은 사족을 뒤로하고 이제부터 드디어 본론.


건강담은 진짜사탕수수캔디 WITH PROPOLIS


'진짜사탕수수' 캔디가 본론인 것 같지만 사실 핵심은 프로폴리스다. 가장 위에 명조체로 써놓은 문장만 읽어봐도 그 의도는 명백하다.


'리얼 슈가 프로폴리스 캔디'


진짜와 가짜 구분이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진짜 설탕과 프로폴리스가 들어갔다는 것이 핵심이다.


상자 겉면의 하단에는 사탕수수를 그려놓았다. 그 밑으로는 각설탕 같은 무언가랑 가루 설탕을 흩뿌려놨다. 마침 아는 형의 카페 일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 요즘이다. 그 덕분에 설탕에 대한 이해가 조금, 아주 조금 생겼다. 이 친구는 분명히 비정제원당일 것이다.



대충 몸에 좋은 거 다 때려 박았다는 얘기



를 조금 더 보기 쉽게 풀어놨다. 더 건강하고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전문가가 엄선해서 만들었으니 한 마디로 얘기하면 몸에 좋은 사탕이라는 뜻일 것이다.



사탕수수원당과 프로폴리스분말과 도라지농축액과 배농축액, 레몬농축액 등등.. 뭣이 많이 들어갔다.


비싼 건 다 때려박아서 각 잡고 만들었다고 했다. 만 솔직히 나는 먹을 거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 탓에 말로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잠시 네이버쇼핑의 가호를 빌어보았다.


그 결과, 각 잡고 만들었다는 말이 허세는 아니다. 시중에 나온 비슷한 사탕들의 프로폴리스 함량은 보통 1 ~ 0.1% 사이다. 이 녀석은 함량이 1%, 거의 최대치에 가깝다. 거기다가 다른 재료들도 함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으니, 제조원가가 높아져서 생각보다 마진이 별로 안 남는다며 우울해 한 누나의 표정 최소한 거짓 없었다. (...)



사업적으로 조금 이해되지 않는 판단을 했다고 생각될 때는 어떤 식으로든 논리적 판단을 상쇄하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나에게 그것은 어머니의 건강이었다.


함께 일하면서 꽤 자주 뵈었지만 누나의 어머니는 당뇨를 갖고 계신다. 나도 외할머니께서 당뇨로 고생한 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먹는 걸 가려야 함은 물론이고 갑자기 찾아오는 혈당 쇼크는 상당히 공포스러우면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싸게 사탕을 만든 것에는 이런 배경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누나는 아마도 너무 비싸서 잘 안 팔리면 엄마가 드시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사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사탕, 이제부터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일단 상자 고급짐 합격. 그래 봐야 사탕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울 일인가 싶지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합격.


근데 같은 용량에 적당한 포장으로 싸게 파는 게 있다. 사탕만 필요한 분들은 그걸 사면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선택지를 만들어놨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듯하다.



뭔가 레몬 빛깔의 영롱함을 떠올리면서 봉다리를 깠는데 거무죽죽한 색깔이 튀어나와서 살짝 당황해버렸다. 이 친구 먹어도 괜찮은 걸까.


는 기대 이상의 고급진 목캔디입니다.


누나와 함께 일했던 시기에 가끔 일을 도와주러 오셨던 '누님의 친한 언니'의 부모님께서는 양봉을 하셨다. 그 덕분에 프로폴리스가 들어간 것들을 먹어볼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기대를 안 했다. 프로폴리스가 딱히 맛있는 재료는 아니니깐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상당히, 꽤나 기대 이상이다. 비싸긴 하지만 돈값은 하는구나 싶은 맛이다.


목을 많이 쓰는 분들이 찾는 게 프로폴리스다. 거기에 더해서 흡연을 하는 중년의 직장인들도 상당히 많이 찾는다. 한 알 집어먹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직장인들 선물로 괜찮겠다'는 것이었다.


화하게 퍼지는 향은 텁텁한 입을 깔끔하게 만들어준다. 한때 흡연을 했던 입장에서 이 친구는 은단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후땡후사탕 테크 타면 딱일 것 같은 맛과 청량함이 이 친구에게는 있다.


(자랑거리는 전혀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든 후한 평을 하는 경우가 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탕은 정말 누나가 각 잡고 만든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사탕을 전해주던 날, 누나는 신림역 개찰구 앞에서 그간의 고생을 30분 넘게 무용담처럼 늘어놓다가 갔다. 괜한 엄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만들었으면 그 정도 엄살은 충분히 부릴 수 있다.



상품명 메타태그에 관련 검색어를 다 집어넣은 건지 링크 상태가 상당히 난잡하다. 솔직히 나라면 이렇게 안 했을 것 같지만 이제는 내 손을 떠났으니 내가 뭐라 할 권한은 딱히 없다.


어쨌든 와디즈에서 펀딩을 마치고 얼마 전부터 스마트스토어에서 열심히 팔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열심히 팔아서 건물.. 까지는 힘들 거고 직원 너덧명 월급은 줄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셨으면 한다. 열심히 잘 만든 사탕이니깐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누나가 존버 또 존버 하시길 바라면서 감사인사 겸 홍보 겸 지난 시간의 회상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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