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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모 May 15. 2017

연애의 온도

너와 나의 온도차이.

5년 전 조금 더운 여름이 되는 지금이었을테다. 그때 내 자취방 앞에 핀 노란 장미들이 아주 예뻤으니까. 그 때 내가 좋아하던 4살 연상의 선배와 학교 뒷편으로 난 나무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떤 대화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뜨거우면 빨리 식게 돼. 그냥 미지근하게 변함없이 관계를 하는게 나아"

현재 내 남자친구 J는 아직 이경인 군인이다. 나와 1년 가까이 만나오고 있는 사랑스러운 연하남. 그가 외박을 나와서 첫날은 나와 보내고, 둘째날 선임들과의 이른 술약속이 있었다. 나는 그날 혼자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있었다. 그가 조금은 일찍 끝날 것 같단 말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가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나는 우리가 자주가던 맥주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이라고. 나는 그가 선임들과 있을 때 정신없이 하던 답장과, 일찍 끝났음에도 내게 볼 수 있냐고 묻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버린 순간들이 쌓여 냉소적으로 변했다. 나는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J와 나의 집은 걸어서 20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였고, 그 맥주집에서 내 집까지 그의 집을 통과해서 가는 코스였다. 내가 답장이 없자 그는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그의 집 근처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집 앞일 때도, '잠깐 볼까? 보고싶어. 잠시만 기다려줘'하고 바랐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나 혼자만 뜨거울 때마다 그가 너무 차가워서 외로웠다. 그가 나처럼 더 뜨거워지길 바라면서 나의 열을 올리면서 그를 뜨겁게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그도 나도 차가워지곤 했다.

나는 그의 집을 통과해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J에게 이야기했다. "너는 미적지근한 것 같아. 나는 뜨겁게 연애를 하고 싶었어. 니가 보고싶다고 내뱉는 말 뿐만이 아닌, 언제고 나를 보러 오는 그런 뜨거움을 바랐어." 그런데 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에겐 그가 가진 온도가 뜨거움일 수도 있다는 것. 금이 녹는 온도와 얼음이 녹는 온도가 다른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녹이는 온도가 다를 뿐일 수도 있다는 것. 나는 뜨겁고, 나의 뜨거움을 채워주는 상대가 나타나길 바라면서, 상대와의 온도차이 때문에 금세 식고는 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상대가 나만큼 뜨겁지 않아서. 상대가 나보다 덜뜨겁다고, 상대가 나를 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나는 가엾은 나의 연인에게 몰아부쳤다. J는 말했다. "미안해, 노력을 하는데도 내가 부족한가봐." 늘 그렇듯 마지막 말을 힘없이 한다. "내가 더 노력할게"

다음날이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카톡 프사와 배경을 내렸다. 얼굴없는 텅빈 동그라미를 쳐다보며, 내 옆에서도 그가 텅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자주 그가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두려웠다. 다시 생각해본다. 사실 나는 어제 그에게 보고싶다고, 기다리면 볼 수 있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정말 사랑하면 나를 보러 오겠지,하고 멋대로 기다리면서 그가 몰라주었다고 떼를 썼다. J는 27살인 내가 가장 길게 연애를 해오고 있는 연인이다. 여태까지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가 나를 떠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인정할만큼 무서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떠나지 않을만큼 나를 간절하게 사랑해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나보다 더 뜨겁지 못한 것이 견딜 수 없을만큼 싫다. 내가 그를 기다리거나 하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과 연애를 해야하는 걸까? 아니, 온도가 맞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온도가 맞으면 더 외롭지 않은 연애를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식을 때 같이 식어가는 사람보다는, 5년 전 내 짝사랑이 했던 말처럼 미지근하게 그 온도에 멈추어 서서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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