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미안해.
오늘도 너와 나는 다투었다. 나는 네가 집에 들렀다 온다는 말에 한시간 쯤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두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어제 근무가 힘들어 집에서 좀 쉬고 편하게 맥주도 마시고 샤워도 하고 오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너였다면, 보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왔을텐데, 같이 쉬고, 같이 맥주를 마셨을텐데.
너와 나는 다르다. 나는 뭐 하나에 빠지면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러 항목에 노력을 잘 배분하는 너와는 다르다. 매번 이런 식으로 '내가 너였다면'이라는 꼬리를 물었고, 나는 매번 나처럼 전력투구하지 않는 네가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 뒤엔 어떤 점이 너에게 서운하고, 이 점은 이렇게 서로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류의 대화가 이어졌다.
솔직히 너와 이렇게 서운한 점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는 점이, 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면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고, 이 점은 같은 마음 아래 맞춰나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주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너와 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너와 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대책만 세워갔을 뿐, 그 문제를 발생시킨 근원은 그대로였다. 마치 목욕은 하지 않고 새 옷만 갈아입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너와 나는 1년을 다투어왔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솔직한 대화에도 귀기울여주고, '노력할게'라고 말하는 점에 네가 더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점점 이런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일목요연하게 주장하면서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너는 사랑하는 나를 잃기 싫어 혼자 자책하며 감당하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너와 나는 연애하기에 정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이 연애가 '나도 이런 연애를 할 수 있구나'의 희망같은 연애기 때문에 놓고 싶지 않다. 너와 나는 서로를 만나는 게 좋지만 가끔 반복되는 문제로 힘들다.
그래서 여태껏 머리로 다가갔다. 연애를 수학문제 풀듯이 증명해본다. 이 현상의 원인과 증상을 규명해, 서로가 노력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내놓고 합의를 본다. 처음엔 현명해 보였던 이 방법이, 오늘 너와 다투고 돌아서고나니 이렇게 바보같을 수 없었다.
나는, 연애를, 머리로 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오는 오늘 너를 보내고 우산을 쓰고 비를 맞고, 감상에 젖어 음악을 들으며 지금이 너와 이별할 시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 시점이 오면 알게 되겠지. 먼저 머리로 찾으려 들지 않아도, 그 때 알려주겠지. 그 전까지 이론정리하지 말고, 다시 다가오지 않을 실전에 집중하라고.
나는 아직도 이 연애를 계속 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