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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모 Mar 12. 2018

나의 이별 이야기

헤어진 지 한 달.

우린 밥을 먹으러 만났었다. 너는 밤새 내린 눈으로 차갑게 식은 땅을 밟아 내게 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볼이라도 한번 스담아줄 걸. 내게 거는 장난에 같이 웃어라도 줄 걸. 먼저 사랑한다며 안아줄 걸. 쌓여있던 게 많은 나는 사소한 것 하나에 너를 몰아붙였다. 격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너는 헤어지자 말했다. 우리는 성격도 안맞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긴 시간을 이어왔는데, 타이밍이 안맞았다. 평소라면 누구 하나가 미안해 노력할게 라며 넘어가고 금세 언제 그랬냐는듯 둘은 웃게 되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너도 나도 스트레스가 참 많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날 네가 쏟은 눈물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밤엔 온몸이 심장이 된 것처럼 심장이 너무 크게 뛰었다. 그러다 문득 누워있는 침대가 무너질 것처럼 심장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감각들은 지각하지 못한 충격과 고통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심장의 날뜀은 내가 이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첫 이별이다. 첫 연애였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하고 처음으로 많은 것을 받고 준 사람. 새로 이사하면서 함께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만들었다. 가구를 하나 둘 들이며 거기서 함께 자고 먹고 마셨다. 곳곳엔 네가 준 선물들의 흔적이 가득하고, 책장엔 우리 함께 한 사진들이 가득하고, 상자엔 길고 짧은 너의 편지들이 200장 정도 담겨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너를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그 편지들을 하나 둘 읽었다.

'많이 사랑하고 보고 싶었어요'

1년 전 서툴게 적은 너의 한 마디 엽서가 나를 후벼팠다. 그제서야 나는 편지지들이 다 울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할만큼 아파하면서. 이별 후 조심스레 건넨 연락에 묵묵부답이던 너를 기다리면서 편지를 썼었다. 너를 붙잡는. 매일 가지고 다녔다. 언제 너를 만날지 마주칠지 모르니까. 그런데 어느 날 너를 놓아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지고 다니던 다이어리를 열어 이별의 말을 간단히 적어 가지고 다니던 편지 뒤에 덧대어 봉투에 넣은 다음 네가 깨어있는 새벽 세시 아파트로 찾아가 우편함에 넣고 왔다.

돌아오는 길이 원래 걸어서 15분이면 되는 거리면서 다신 걷지 못할 것 같아 50분을 서성이고 울고 주저앉으며 걸었다. 집으로 돌아와 집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사진들을 안보이는 곳으로 치워두고, 작은 것들을 하나 둘 버렸다. 핸드폰에 사진 1,000장도 지워버렸다.

이틀 뒤 내 우편함에 너의 이별편지가 꽂혀 있었다. 눈물 두방울의 흔적이 있는 한장. 정리해가는 마음이 보이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져 더욱 아픈 편지였다. 내가 너를 너무 많이 겁쟁이로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나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거란 말이 왜 여기에 적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를 붙잡는 편지에 함께 아카시아 향을 맡자던 그 약속 지키자고 했었는데, 편지에 넣어둔 USB안에는 네가 작곡한 아카시아라는 곡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카시아를 보냈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오늘이 헤어진 지 한 달. 이별편지를 주고 받은지 2주. 여전히 우리가 만들었던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리지 않는 문 손잡이를 잡고 눈물을 터뜨리곤 한다. 언제쯤 이 습관이 사라질지 모르지만 서서히 더 정리해가려고 한다. 네가 선물한 말린 꽃들도 버리고, 편지도 어딘가 깊숙히 넣어두어야지. 내 할 일에 더 집중해서, 너를 만나기 이전보다 더 삶에 열정적인 내가 되어야겠다. 너를 처음 만나던 그 때의 그랬던 내 모습에 네가 호감을 느꼈으니까. 너를 만나고 나를 잃어가며 너를 더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이제 나는 상처받았던 너에게 그리고 힘들었던 나에게 사과를 할 수 있을만큼 강한 사람이 될 거다.

앞으로도 네 생각이 많이 나겠지만, 네가 남겨준 것들을 예쁘게 담아두고, 문득 너에게 전하고 싶은 좋은 소식이 있으면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아직 네가 나의 연인이 다시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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