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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모 Mar 12. 2020

네가 없는 나

연애를 할 때면 너의 어떤 부분이 너무 좋아서 사귀었겠지, 그런 부분을 좋아하다보면 닮게 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 어떤 부분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의 부분들을 하나둘 놓아야한다. 


나는 네가 좋다. 사랑하게 되었다. 너라면 함께 가정을 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내 불안한 심경이 동요해 이전에는 없던 미래를 만든다. 그만큼 깊숙하게 들어오는 너와 다투는 날이 종종 있다. 내가 너무 좋다고 말하던 사랑 가득한 얼굴에 지친 기색만 가득해서 연애를 힘들어하는 표정을 하는 너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어느 새 너의 사랑에 의존하게 된 나는 내 잘못을 먼저 찾고 어떻게 노력하면 될지 생각한다. 너의 뒷모습에 대고 사랑해,라고 말한다. 응이라는 대답만이 돌아왔을 때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른이 되면서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자존감은 곤두박질 치고, 내가 존재했던 어딘가, 어느 시점을 막연하게 그리워하며 살고 있단 사실을 조금씩 인지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는 뭘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플랜을 세우지만 나는 이미 그런 것들을 할 나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 과거의 나로 버티고 미래의 나를 갈망하는 상태에서 너를 만났다. 


내가 어떤 누구이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나를 어떠한 모양새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이미 빠져 헤어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너조차, 힘이 들때면 '이건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연애의 모습이 아니야'라고 뱉어버린다. 나는 너에게 요구되는 내가 있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몇번의 싸움이 반복되며 느끼는 좌절과 40 시간 정도의 새벽 시간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온 아침 이면 충분했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면서, 잃어버린 과거의 나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만들어지는 사랑스러운 멋진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너에게 요구되는 내가 점점 커지고 강해지고 있는 거라면, 나는 네가 없는 내가 훨씬 더 나라는 사실은 안다. 내가 원하는 건 괜찮아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괜찮은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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