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모 Aug 15. 2020

어떤 사람의 외로움

어느 날 차가운 지하철에서

겨울에서 봄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운 기운이 애써 챙겨입은 외투에 가로막혀 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이른 퇴근을 하고 사람이 듬성듬성 서있는 분당선 지하철에 앉아가고 있었다. 왼쪽 옆자리엔 두툼한 패딩 차림의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패딩은 검은 색이 바래지도록 낡았고, 거친 손에 두툼한 서류봉투를 하나 쥐고 계셨다. 나는 그분이 서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남루한 차림의 옆자리 아저씨가 썩 맘에 들지 않아 꽤 의식을 하던 차였다.


30여 분 가는 길 내내 아저씨는 핸드폰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중년의 스마트폰이 그렇듯 글씨가 큼직해서 카톡 내용이 다 보였는데, 아저씨는 곧 다가오는 봄이 좋아 영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답을 하지 않은 채 1이 사라져있었고, 어떤 분은 ‘이딴거 보내지 마세요’라는 차가운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아저씨는 한참을 읽으셨다. 털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텁텁하고 마른 입만은 내게 느껴졌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밝은 햇살이 비추는 시각이었지만, 어쩐지 그 날 봄은 좀 창백하고 메마른 느낌이었다. 문득 패딩에 털모자가 그 아저씨를 덜 춥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2017년의 일이다. 사실 그땐 7월이었고 봄 영상이 아닌 폭포영상이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지하철만 타면 그 옆자리 아저씨가 생각났다. 어느 시기인지 날을 까먹을 때쯤, 그의 외로움이 너무 추워 겨울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썼다. 타인을 향한 무작위 연민과, 카톡염탐이란 프라이버시 침해는 나의 분명한 부덕이라 스스로 계속 부끄럽다. 하지만 그 외로움에 너무 공감이 가서, 나지막히 그 카톡에 함께 슬퍼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 부질없이 이 글을 올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없는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