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 일이 생기고 보름 정도 지났다. 그 사이 나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 관계가 힘이 들어서 헤어짐을 한번 이야기도 했었지만, 남자친구가 써준 일주년 편지의 내용을 보고 아직까지 헤어져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다시 관계를 돌이켰다. 나는 그 일이 생기고 진심어린 담담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의 질문과 그의 답이 오간 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것이라는 말 또한 지금 나랑 헤어지지 않으려면 해야할 말이라고 먼저 알려준 대사였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와 이어져오는 일상에 그가 잘못한 주제에 먼저 떠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멍청해서 자괴감에 빠졌다. 내 자존감은 어딜 간것이며 왜 되지도 않은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자책했다.
불행하게도, 나도 애정결핍을 가진 불안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남자친구가 여태껏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으로 안정감을 얻어 일탈까지 가진 않은 상태였을 뿐. 그래도 나는 지금 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내 감정을 돌볼 의무가 있다. 이 두 가지만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헤어지지 않은 이유는 내가 아직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 사랑하지만 더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단호하게 정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남은 감정을 모두 소진시켜야만 관계에 대한 정리가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상처가 있어도 받게 될테지만 그런 과정에서의 내 선택을 존중해야만 한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전 연애도 그랬으나 이번엔 하나가 더 나아져야할 것이다. 할 거면 제대로 할 것.
막연하게 헤어짐을 다짐하진 않기로 했다. 결과에 대한 예상을 하고 어설픈 방어기제를 세워 둘다 상처입을 순 없다. 내가 더 상처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헤어지려고 더 만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나를 놓았던 그 순간에 대해서 비난은 이제 그만 하려 한다. 나는 이미 그에게 이야기를 해두었다. 나는 상처받았고 힘들며 회복해야할 감정이 있다. 언제 괜찮아 질지 모르겠지만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기간에 내가 그를, 그리고 그가 나를 갉아먹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좋은 여자이기 때문에 나를 놓치면 그는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었음에도 이번 일로 롤러코스터를 타며 무너진 생각이었다. 좋은 여자가 되기 위해 다시 바로 서야 한다.
그와 나는 지난 1년간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나의 이직과 그의 직장 여건과 함께 우린 최근부터 시간이 많이 없어졌다. 이제는 예전처럼 내가 맞춰줄 수 없으니 무리하지 말고, 또한 그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할 것. 연락을 하면 되도록 긍정적인 이야기만 할 것. 그렇게 서로의 거리를 둘 것. 이 조치로 인해 서로 소원해지고 그래서 마음이 떨어질까 현재로선 불안하지만 다행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인연이었다는 뜻일테니. 그 사이에 나는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차피 상처받을테지만 나를 잃지 않으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연애가 이런 혼자만의 투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