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인포메티쿠스 No.3
여름과 가을이 만나던 그즈음, 이틀 연속 하루는 목멱산(남산), 또 하루는 인왕산을 걸었다. 이미 해가 진 산책길의 배경은 어두웠다. 그러나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한양도성 달빛기행’ 당일, 비 소식이 있었다. 아무리 험하지 않다 해도 산길이고 밤길인데 취소 되겠구나 했는데 문자가 왔다.
‘딩동’ “[달빛기행-목멱] 우천 시 진행합니다(우비 배부)” 비 소식에 지레 편한 옷도 준비하지 않았던 나는 정장 차림에 우산도 없었다. 그나마 굽 없는 샌들을 신은 게 다행이었다. 만남 장소인 장충동체육관으로 향하는 길엔 비가 오지 않았다. 어쩌면 비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 내심 기대했지만 기대는 곧 무너졌다.
저녁 7시20분 집결. 한두 분의 안내자가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행사 스태프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조차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얼른 스탭진에게 우비를 받아 뒤집어쓰고는 가방도 우비 속으로 걸쳐 맸다. 차림은 미비했지만 마음만은 완비. 첫 도성 걷기라는 설렘에 이대로 고산준령도 오를 기세로 출발을 기다렸다. 목멱 1구간. 장충체육관부터 도성을 따라 반얀트리 호텔,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 팔각정까지 가는 코스였다. 문선 도성길라잡이님의 뒤를 따라 50여명이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남산이 뒷산인 해방촌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땐 남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산책을 했었다. 오늘 산행길이 익숙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번화한 대로 앞 장충단 사잇길로 접어드니 성벽이 나오면서 호젓한 산길이 이어졌다.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길이었을 뿐 아니라 아마 혼자였다면 영영 찾지 못한 길이었을 듯 했다.
“한양 도성의 성벽은 조선 태종 때 처음 만들어졌어요. 성벽 쌓는 일은 전국의 백성이 다 참여했습니다. 처음 도성을 쌓은 건 겨울이었는데 49일밖에 안 걸렸대요. 지금은 돌 위에 서있지만 처음에는 흙을 쌓고 그 위에 돌을 얹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돌에 지역 이름이 써 있어요. 지금 이곳은 주로 경상도 백성들이 쌓은 구간이라 경산, 울산, 예천 이런 지명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름을 새긴 이유는 요새 말로 하면 책임제, 부실공사를 하면 책임지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려와 쌓았답니다. 실제로 함경도 사람이 불려와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문선 선생님의 구수한 옛 이야기가 시작됐다. 빗줄기에 목소리가 묻히긴 했지만 그 빗소리 때문에 정겹고 낭만적으로 들렸다.
우리는 작은 암문(secret gate)을 지나 도성 안쪽 성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벽을 보면 작은 구멍들이 있어요. 총 쏘는 구멍인데 항상 3개씩 있죠. 들여다보면 직선, 경사진 것이 있습니다. 직선은 멀리, 경사 있는 구멍은 가까운 곳을 쏘는 곳이랍니다. 지금은 돌이 붙어있지만 예전에는 돌이 떨어져있어서 던져서 무기로 쓰기도 있었다고 해요.” 매번 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설명들이 이어졌다.
큰 건물들이 나오니 성벽이 끊어졌다. 국립극장, 반얀트리호텔 등을 짓느라 성벽을 허문 까닭이라고 했다. “우측에 있는 곳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나왔던 버티고개입니다. 세조시대에 풍수지리상 여기에 난 문이 좋지 않다고 해서 폐쇄를 했는데 그러자 오히려 도둑들이 들끓게 됐다고 해요. 그래서 ‘버티고개에 있을 놈’이란 말에 도둑질 해서 먹고 살 놈이란 뜻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건물 뒤를 따라 걸으니 국립극장이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진 곳으로 육영수 여사가 살해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사이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시야가 안보일 지경이었다. 치마 밑에 드러난 다리는 잠시 멈춰 설 때마다 모기들의 숱한 공격을 받았다. 스태프들은 여기서 하산할 사람과 완주할 사람을 갈랐고, 나는 하산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아쉬웠다. 바로 다음날 다른 도성 걷기에 참여했다.
인왕산 1구간, 경복궁역 사직단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따라 걸어 수성동계곡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이날은 비가 막 그친 터라 날이 맑았다. 임금이 토지의 신에게 제를 지내던 사직단에서 만나 뒤로 돌아나가니 도성길이 이어졌다. 역시 혼자라면 찾지 못했을 것 같은 길이었다.
이날은 양승수 도성길라잡이 선생님이 함께 해주셨다. “서울의 도읍 역사를 보면, 조선의 한양도성으로 따지면 600년, 백제까지 가면 2천년입니다.” 양승수 선생님은 함께 걷는 곳에 대한 설명도 하셨지만 배경이나 본인의 해석도 많이 들려주셨다. “이렇게 자연 속을 걷다보면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하는 감각들이 예민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암문을 통과해 인왕산을 향했다.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나가니 도심에서 갑자기 자연으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마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자박자박 모래 밟는 소리, 찌륵찌륵 풀벌레소리, 발걸음을 비춰주는 은은한 조명. 뭔가 끊임없이 오감을 자극했지만 걸을수록 마음은 고요해졌다. 함께 걷는 이들을 보니 엄마와 딸, 친구, 부부, 연인...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인왕산에서 조망이 제일 좋다는 곳에 멈춰서니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한 외국인 친구는 지인한테 남산타워를 설명할 때 ‘서울의 도넛’이라고 한답니다. 남산의 중심인 남산타워와 서울 도심은 조명이 환한데 남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캄캄하니 꼭 도넛처럼 보인다고 해요. 서울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저도 길라잡이 하기 전엔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말마따나 절경이었다.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곧 3편의 시 낭송이 이어졌다. 예상 밖의 순서였지만 자연 속에서의 시 낭송은 뭔가 가슴으로 듣게 하는 맛이 있었다. 청계천의 발원지 수성동 계곡에 이르러서는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의 배경이 되었다는 바위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계곡 끝자락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30분간 송은한 씨의 해금공연을 들었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와 청아한 악기 소리. 자연을 배경으로 시와 그림과 음악을 즐길 수 있다니 작은 문화제가 따로 없었다.
한 번은 심야에 빗속을 걸었고, 한 번은 시 낭송과 해금공연이 있는 도성 걷기를 했다. 혼자라면 가지 않을 길을 함께 걸어 좋았다. 혼자라면 잰 걸음으로 걷지 못했을 텐데 2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어 좋았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 69세 최씨 성을 가진 분이 방화를 했습니다. 이 때 눈물을 흘린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도성길라잡이가 생겼어요. 궁궐 안내 자원봉사를 하시던 분들이 우리 문화를 아끼고 돌봐야한다는 생각을 계셨고, 이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답사를 하면서 시작이 됐습니다.”
밤을 걷는 ‘달빛 걷기’는 특별행사였지만 한양도성 길라잡이가 안내하는 도성 걷기 프로그램은 주말마다 참석 가능하다. 3월부터 12월 둘째주까지 매주 일요일(13:30-17:00), 18.6.km의 한양도성을 4구간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4번 참석해 한양도성 걷기를 완주하면 완주기념 배지도 받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양도성 홈페이지( http://seoulcitywall.seoul.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