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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Dec 25. 2018

말이라는 마법

크레덴스를 떠올리며

출처: 구글, 신비한동물사전 영화 장면


1.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에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크레덴스는 억압되고 뒤틀린 어린 시절의 고통으로 인해 옵스큐러스라는 어두운 기생 에너지를 소유하게 된다. 옵스큐러스는 불안정하고 통제 불가능한 어둠의 힘으로, 불시에 작동하여 주변을 공격하고 사라진다.
이 옵스큐러스는 주로 어린 마법사들이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숨기려고 억누르다가 개발한 ‘억압된 에너지’인데, 크레덴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옵스큐러스를 버리지 못하고 점점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가 되어 간다.

2.
이상하게도 이번 연말은 유독 나쁜말로 인해 속이 시끄러워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비단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도 내 친구, 가족, 팀원들이 말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깨어지는 일이 있었다. 하다못해 오늘은 즐겁게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느 상점 앞에서 손님과 주인이 언성을 높이면서 ‘귀싸대기를 날리네 마네’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마음이 싸늘하고 외로워졌다. 그리고 이 겨울, 나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크레덴스와 비슷한 존재는 아닐까 생각했다. ‘말’이라는 마법의 가능성을 지닌 미숙한 어른아이 크레덴스 말이다.

3.
마법이라는 것은 결국 주문(=말)으로 발산되는 에너지이다.(덤블도어처럼 위대한 마법사는 굳이 주문을 외치지 않고서도 마법을 부리지만) 어떠한 주문을 외치느냐에 따라서 그 마법은 사람을 해칠 수도 있고 지킬 수도 있다. 상대방을 파괴할수도 있고 치유할수도 있는 것이 마법이고 주문인 것이다.
자신이 지닌 분노와 두려움 때문에 ‘말’이라는 마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우리는 주변과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공격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4.
생각해본다. 올 한해 나는 내 안의 크레덴스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분노를 다스리고 말을 점검하면서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성화되어 갔는지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일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의 고통이 너무 버거웠던 크레덴스는 결국 그에게 마법을 통제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좋은 마법사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을 학대하거나 방치했던 세상을 파괴하면서 자신도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안쓰러운 크레덴스, 그리고 크레덴스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따뜻해야 할 연말에 내 속과 저 바깥은 여전히 폭언과 구설수로 가득하다. 그렇게 싸늘하고도 더운 마음 위로 하얀 눈처럼 성탄절이 내리는 중이다.
그러니 오늘 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뭐라도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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