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23.05.06 / Editor 버들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뒤늦게 화제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영화는 멀티버스(multi-verse)의 우주를 상정하고 매번 갑작스럽게 평행 세계들 사이를 넘나드는데, 어느 세계에서는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딸인 존재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목숨을 노리는 적이 되었다가 조력자도 되었다가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식을 뛰어넘는 표현에 감탄하던 중, 이 영화는 이 순간을 위해 지금껏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구나 싶은 어떤 장면에서 울음이 팍 터졌다. 그 장면은 많은 평행 세계 중 돌멩이의 세계였기 때문에, 결코 배우의 연기만으로 감동해서 운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굳이 덧붙여본다.
가족은 나에게 늘 그런 존재였다. 평생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했으나 도달한 결론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고, 단지 ‘나에게’ 그들이 어떤 의미인가만을 어렴풋이 생각해볼 수 있을 뿐인. 단순히 ‘가족은 사랑이지’ 라거나 ‘가족은 지옥이야’ 라고 일축해서 말하기에는 지난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왔고, 그리고 또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 가족은, 맛있는 차를 발견하면 맛보여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커피만 마시는 가족들이 있는 본가에 갈 때면 주섬주섬 다기를 챙긴다. 도착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면 지지난달보다 또 부쩍 늙은 부모님 모습에 뭉클하다. 짐을 풀다 다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 번은 번거롭게 이런 걸 챙겨왔냐고 면박을 듣는다. 본가에 가서 차를 우리면 집에서 혼자 마실 때보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좀 맛이 없는 것 같다. 속상한 마음에 제풀에 삐쭉거리면 부모님은 우리는 자식을 별나게 키우지 않았는데 매사에 쓸데없이 까다롭다며 혀를 끌끌 찬다. 모든 것은 다 그 나름의 쓸데가 있는 것인데 쓸데없다는 말에 마음이 상한 나는 말도 안 하고 방에 콕 처박혀버린다. 주말드라마 시작할 시간이 되면 아빠는 내가 삐진 걸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꼭 방문을 벌컥 열고 부른다. 일단 드라마가 시작되면 내 감정 따위는... 휘말려버린다.
물론 위에 그린 어느 주말 풍경은 희극과 비극 중 소품 정도의 희극만을 골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소동극 안에 부모님 두 분과 곰돌이 같은 동생이 다 있어 주기만 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그 모든 가족의 역사와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다함께 소용돌이치는 에브리씽 베이글 같은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감히 내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부디 차가 맛있게 우려지기를 바라며, 어버이날을 끼고 본가를 방문할 찻짐을 꾸린다.
동아시아의 좋은 차
Magpie&Tiger
‘차와 닮은 삶’은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느꼈던 차와 닮은 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글, 이미지, 영상, 사진 무엇이든 좋아요. 이것도 차와 닮은 삶이지 않을까? 라는 작은 이야기를 던져보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