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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비스 Aug 19. 2023

캐나다 이민뽕의 유효기간

이주 1년 차. 나아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어진다

해외 이민뽕의 유효기간

사주를 본다. 마음이 힘들 땐 상담이 최고지만 가성비로는 사주만 한 게 없다. 누구한테 봐달라고 하다 아예 직접 공부했다. 대학원 2년간 가장 열심히 한 공부는 사주명리학이었다. 운 좋게 입학했던 MBA과정은 사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야매의 극한의 코오스였고 날고 기는 동기들 사이에서 난 그냥 말하는 감자였다.

감자에게 사주는 좋은 도피처였다. 최근 학부모 갑질로 자꾸 학교 이름이 보인다. 여기저기서 '학력세탁' 댓글이 보이는데 괜히 찔린다. 여하튼 석사학위는 이민 점수 올리는 데는 최고입니다.


목화토금수 오행이 나름 다 들어있다. 어디 크게 아픈데도 없으니 감사해야 마땅하다. 가슴이 쎄-해지는 풀이가 종종 보인다. '좋은 마무리'가 부족하다. 시작은 거창했는데 마무리는 미약하다.


뱃속이 싸한 이 느낌은 뭘까. 부끄러움인가.


해외 이민의 유효기간은 며칠일까?


22년 9월 7일 입국. 곧 1년이 된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작. 일본 워홀이 그랬다. 무엇보다 도무지 서울에서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고인 물이 전체 맵을 다 클리어 한 이후의 감정. 멀어지는 인천공항을 보며 다짐했다. '이번엔 진짜. 진짜 떠나는 거야'

더 이상 대한민국 헤테로섹슈얼 패밀리 '커뮤니티'에 속할 수 없겠다는 외로움. 월급 받던 직원과 월급 주던 사장의 고통을 모두 겪어 봤으니 그것보다는 덜 힘들 거란 착각. 다짐과 계획은 깨지라고 만들어진 건가보다.


몸을 쓰는 일. 쌍욕을 들었다.


식당에 취업했다. 30대 중반 여성(어쩌다 석사)이 가장 빠르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식당일이다.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투자이민을 하면 된다. 다른 학위를 밟아도 좋다. 그런 건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 나에게는 매달 갚아야 할 빚이 있다.


BC주 레스토랑 인건비 근황
주방일 기본 시급 20달러
당신이 샐몬을 잡을 줄 안다? 축하합니다 25달러
당신이 중화웍 요리를 한다? 축하합니다 25달러
메인 셰프가 가능하다? 축하합니다 30달러

캐나다의 COOK은 기술자, 전문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정보입니다.


몸 쓰는 일은 처음이니 최저시급 $15에서 시작했다. OK. 그럴 수 있지.

디쉬 3일 차. 자다 팔이 아파 깬다. 디쉬 트레이를 잡던 포즈대로 잠에서 깬다. 힘들다.

튀김 3주 차. 기름이 눈두덩이에 튀었다. 아프다. 화상약은 참기름으로 만드는 건가? 냄새가 고소하다.

이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듣는 쌍욕.

주변 물정 모르고 시작해 남들보다 2-3달러 낮은 시급.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일 자체가 힘들어 사람 구하는 게 더 힘든 자리라는 걸 알게 된 건 LMIA를 받은 한 달 후쯤의 일. 나는 그래도 먹고살만해서 괜찮은데 '너는 너무 순진하고, 너무 눈치가 없다'는 타인의 판단.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
정해진 고용주에게서만 일할 수 있는 폐쇄형 취업비자. 일손이 필요한 직종의 해외 이민자 유입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이직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고용주와 고용인 모두 리스크가 높은 비자.
'노예비자' 로도 불린다.


영주권을 따는 과정은 다양하다. 젊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면 초대장을 받고 시작할 수도 있다.

나는 안 젊고 영어는 그냥 하니까 1년만 해보면 될 것 같다.

나이, 학력, 경력 이런저런 점수에 캐나다 경력을 더하면 될 것 같다.

그래. 딱 1년. 갭이어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할만할 것 같아 시작한 일의 과정인데 딱 1년 만에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써 내려간다.  


가장 큰 두려움은 돌아갈 곳도, 나아갈 곳도 없다는 막막함.


"영주권 따면 뭐 하고 싶어?"

"코스트코에서 일하고 싶어"


열에 여덟, 아홉은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대답.

정해진 일을 실수 없이 하고, (월급을 받고)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의료보험도 받고)

딱 거기까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시키는 건 너무 어렵다.

(코스트코에서 고용해 주신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그런 일' 말고 더 제대로 된 걸 해야지.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잖아.


그런 일 이란 도대체 뭐죠?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버겁다.


맑은 공기의 일상화, 일상의 무감각화


여전히 단풍국의 나무는 높고,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맑다.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여름에는 해가 저녁 9시에 진다. 12시간을 일하고 가게 밖으로 보이는 석양이 예쁘니 이걸로 되었다.

아직 더 내려놔야 하나보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 겠죠?


가족이 멀리 있어서 다들 이렇게 막대 하는 건가? 힘든 일을 연달아 맞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든다. 엄마와 친구들은 늘 거기서 응원을 보낸다. 삶은 여기나 거기나 고통 때때로의 기쁨. 결국 생각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리얼터가 될 수 있을까.


멈추고 싶었다. 더 넓은 집, 더 비싼 차 이런 거 말고 나와 쿠가 안전한 공간.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여유. 조금 더 욕심내서 커피콩을 가격표 안 보고 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면 대부분 나보다 남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시간적 자유가 있을 땐 돈이 없다. 적게 소유하고 적게 누리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만 같이 놀 사람도 없다. 파이어가 유행이라 일정 부분 도전해 보았는데, 평일 낮 점심시간 내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 있었다. 여기선 그래도 뭐라도.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있어 다행이다.


퀴어, 여성, 비혼, 1인가구.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만들어 둔대로 과업설정 - 목표달성 - 더 높은 과업설정. 이건 그만하고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지인에게 했던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언제든 너와 네 고양이가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집 하나는 만들어 볼게.

벌도 키우고 싶다.

영어도 더 잘하고 싶다.


여전히 욕심이 많다.

이게 나의 '열심히 살지 않음'이다.

아마도 평생 열심히 살 것 같다.


존버하자. 나에게는 책임져야할 쿠생키가 있다.


이민뽕의 유효기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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