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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비스 Sep 12. 2023

캐나다에서 차를 한번 사보겠습니다.

#밴쿠버카푸어 #현금일시불 #11년식 #15만km

alternator

"중고차는 절대 사면 안 돼"
"차값은 내 월급의 n배까지. 그전엔 무조건 BMW -Bus Metro Walk-"
"집을 사기 전까지 차는 절대 안 돼!"


서울.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진짜 BMW, 벤츠, 아우디는 널려있고

그보다 더 많은 차들이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데

서른 중반. 내 집은 없어도 내 차는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허영심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러려고 1톤 트럭 몰아가며 1종 보통을 딴 게 아닌데!


캐나다.


차는 기회다.

직장에서 잘렸다. 시원하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 지난한 과정과 감정선은 굳이 들춰 무엇하겠는가.라고 담담하게 풀어내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은둔기간이 필요했지만 글을 써 내려갈 만큼 회복했다.


당장 새로운 직업을 찾을 때 차는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민 도전자가 동경하는 직업은 당연히 현지인들에게도 매력적이다. 나도 사무직 하고 싶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 그러니 더 멀리, 더 외진 곳으로 가야 한다. 필연적이다.


차는 절약 - SAVING -이다.

기름값은요? 출퇴근거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활에 필요한 용도로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기름값 = Skytrain 월 정액 요금 수준이다. 그만큼 대중교통이 저렴하지 않다. 출퇴근 거리를 제외한 한 달 기름값은 150불 이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3 ZONE이며 월정액 요금도 딱 그 정도이다.



스카이 트레인이란?
밴쿠버를 아우르는 무인 경전철. 현재 3개의 라인으로 운영되며 버스, Sea버스와 환승도 가능하다. 외부로 드러나는 라인이 많아 밴쿠버 투어에 추천.
요금은 성인 기준
1 존=$3.15
2 존=$4.55
3 존=$6.20


그럼 스카이트레인 타면 되잖아요?

코스트코 가야 한다. 농담이 아니다. 한국 매출을 보며 회장님이 눈물을 흘렸다지만 해 먹는 게 사 먹는 비용의 1/3 이하인 북미에서 코스트코는 그야말로 은총이다. 하다못해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 먹어도 기본 $10 인 이곳에서 대용량 식재료를 저렴하게 정기적으로 사기 위해서 차는 필수다.


우버 타면 되잖아요?

주변에 워킹홀리데이로 온 친구들과 비용을 비교해 봤다. 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교통 + 우버 조합으로 이동을 하는 경우와 차 유지비는 거의 비슷했다.

종종 프랜차이즈 특가 할인 쿠폰이 생겨도 동선 안에 매장이 없으면 그림의 떡, 액정 속의 픽셀이다.



좌) 맥카페 1딸라의 은총 우) 병을 갖다주면 돈을 줍니다


하다못해 동네 렉센터*를 가려고 해도 차를 타야 한다. 9월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비는 또 어찌나 자주 오는지.

언제든 필요할 때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회비용 측면에서 차를 사는 것이 내 생활패턴과 일치도가 높았다.   


*렉센터 (recreation center)
수영장, Gym, 아이스링크 등 지역주민을 위한 종합 체육 시설


차가 '갖고 싶었다' 기 보다는

차가 있어야 타인의 의지에 내가 덜 휘둘릴 것 같았다.

해고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기회를 늘리려면 북미에서 차는 거의 필수재이다.


그래서 무슨 차를 샀어?


$10,000 일시불. 살 수 있던 딱 한대의 차.

만 달러 정도는 시원하게 지를 수 있는 재력이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지 신용(CREDIT)이 0인 외국인이 차를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일. 시. 불'. 다른 말로 현금 박치기.


카푸어의 필수 덕목. 구매 후 인증샷


심지어 차를 사던 당시 원자재 부족, 반도체 대란 등으로 신차는 1년 이상 대기가 있었다. 바로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로 출고 1년 차 중고차가격이 신차보다 비싼 기현상까지 벌어지던 그때. 전재산을 탈탈 털어, 영끌해 살 수 있던 단 한대의 차, 11년식 150,000km의 SCION tC 쿠페. 보험료까지 일시불로 내고 나니 통장잔고는 0으로 수렴했다.


유지비는 괜찮아?

안 괜찮다. 차는 무조건 중고차를 산다는 철칙이 있지만 누적 마일리지 15만이 넘는 차는 처음인 데다 차체가 낮은 쿠페도 처음이라 올해 1월 1일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고속으로 주행하다 앞바퀴 2개를 다 터트리고 휠까지 깨먹는 사고를 냈다.


또 한 번은 alternator 고장으로 집 옆옆 골목에서 차가 멈춰서는 일도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콜택시를 불러 배터리를 점프해 우선 집까지 이동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핸들이 무거워진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자꾸 문제가 생기니 차 팔아버릴까 싶다가도,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며 15분 거리를 1시간에 걸쳐 도착하며 '역시 고쳐야겠다..'라고 결심한다.



좌) 이게 alternator 라는걸 저도 알고싶지 않았습니다.


나쁘기만 한건 아니다. 타이어 펑크 사고 직후 스페어 타이어로 직접 교환해 보며 생계형 스킬이 +1 추가 되었다. Tire Pressure Monitoring System이라는 부품을 아마존으로 사보기도 하고 시거잭에 연결하는 공기주입장치도 사며 간단한 관리는 직접 하기 시작했다. 뒷자리가 접히는 덕분에 이사도 직접 하고 일을 하며 가게에 필요한 것들을 운반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스페어 타이어 교체방법을 알려준 유튜브와 구글에 무한감사를

분명 차가 없었다면 절약할 수 있기도 했을거고 그만큼 경험치와 선택지의 가능성도 적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역마살 만렙의 나에게 1년전 일시불 차량 구매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곧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당분간 왕복 80km 출퇴근을 해야 한다.


부디 싸이언 tC 님과 나 자신이 잘 버텨주길 바라며 북미에서 일시불로 차 뽑은 썰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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