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제시 리버모어와 함께 하는 주식 시장의 사유
함께 주식투자를 하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종목이 있다. 바이오 기업으로 거래정지 종목이었는데, 최근에 다시 거래가 재개되었고 여의도에서 눈 여겨보는 기업이라고 했다. 거래정지기간 4천 원이었던 종목은 거래재개 후 10%, 5%씩 지속 올라 단숨에 6천 원까지 상승했다. 거래정지 후 회사의 자구책으로 2분기 실적을 흑자를 내는 턴어라운드 기업이었다.
차트를 보니 심상치 않은 움직이었다. 가지고 있던 현금 5백만 원을 초기 투자금 시작했다. 5백만 원은 순식간에 7백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이 기업 정말 대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단기간 급등주에 붙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커서 이후 관망하고 있었다.
바이오 기업 투자 기간 동안 나는 이런저런 투자서를 많이 읽고 있었다.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를 읽으면서 위대한 기업이 지금 투자하는 바이오 기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책 속에 위대한 기업을 판별하는 원칙에 맞춰 바이오 기업을 분석했다. 네이버 종토방에 글도 올리며 그 기업의
팔로워가 되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러티브와 차트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바이오 기업은 마치 나를 유혹하는 도깨비불처럼 보였다, 아니 돈다발로 보였다는 것이 정확했다. 주가는 타올랐다. 거래량은 폭발했고, 캔들은 매일 같이 붉게 솟아올랐다. 나는 불안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계좌 속 현금으로는 부족했다. 불꽃처럼 타올랐던 나는 불안했다.
“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계좌 속 현금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신용대출을 해 바이오 기업에 내가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빌려 매수했다.
“절대로 신용을 크게 쓰지 말자. 내가 가진 자금으로만 투자를 하자” 되새기며 시장에 참여했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캔들과 기업 내러티브에 대한 확신은 그 원칙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처음에는 짜릿했다. 주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계좌는 눈부시게 불어났다. 하루 만에 수십, 많게는 수백만 원의 이익이 찍혔다. 마치 내가 시장을 지배하는 투자자가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5~6주의 시간이 지났고, 주가는 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의 하락으로 신용으로
확대된 손실은 내 심장을 찔렀다. 특히, 하한가에 도달했을 때의 그 공포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수익이 사라지면서 나는 공포에 휘둘렸다. 하지만 매도는 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반등할 것이다”라는 희망이 나를 붙잡았다. IR과 종토방의 정보는 나의 무지를 겨냥했고,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기업에 대한 확신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신용(레버리지)을 통해 힘을 키우려 했던 나는, 오히려 그 힘에 압도당했다. 시장은 나를 무자비하게 끌고 다녔다. 결국 남은 것은 심리적 피폐와 계좌
의 파괴였다. 나는 바이오 기업을 통해, 힘을 얻으려다 힘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세계는 권력에의 의지이다. - 그리고 그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 권력에의 의지이며 – 그리고 그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단순히 생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려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가 바로 이런 것일까?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더 많이 소유하고 싶다는 충동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이성적 판단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오직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욕망만이 남았다.
니체에게 세계는 물질의 집합체도, 신의 창조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힘들이 서로 충돌하고 지배하고 창조하는 장이었다. 힘은 단순히 물리적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스스로를 확장하려는 의지, 더 강해지려는 충동이다. 주식시장만큼 이 말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도 있을까.
시장은 숫자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힘이자 권력의 투쟁장이다. 수급의 힘, 군중 심리의 힘, 외국인과 기관, 개인의 힘, 권력자의 힘들이 합쳐져서 시세를 만든다. 무엇보다 개인투자자의 개개인의 신용의 힘, 레버리지는 그 힘을 단번에 증폭시키는 장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레버리지는 투자자의 힘에의 의지를 시험하는 무대다.
나는 레버리지를 쓰며 잠시 주식시장을 정복할 듯한 환각을 보았다. 그러나 그 환각은 내 의지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는 단순히 큰 힘,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긍정하는 의지다. 나는 레버리지를 통해 힘을 당겨왔지만, 그 힘을 긍정하지 못했다.
“우선 시장에서 쉬지 않고 계속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 나는 여러 번 모든 걸 정리하고 현금을 손에 쥔 채 기다렸던 경우가 많았다.”
리버모어는 레버리지의 화신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빚을 내어 매수하거나 공매도에 들어갔다. 그의 별명 중 하나는 “보이 플런저(plunger)”였다. 그것은 곧 ‘투기꾼이자 깊이 뛰어드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언제나 시장에 깊이 뛰어들었다.
1907년, 미국 금융시장은 공황에 휩싸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손실을 입었지만, 리버모어는 정반대였다. 그는 철도와 철강주에 과감하게 신용을 끌어와 공매도에 베팅했고, 결국 그는 공황 기간 동안 약 3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다. 당시 그는 단숨에 월가의 전설로 떠올랐다. 하지만 같은 레버리지는 그를 몰락으로도 이끌었다. 1920년대 후반, 그는 또다시 신용을 극단적으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승리했지만, 시장의 반전 앞에서 그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네 번의 파산은 그의 힘을 증폭시킨 레버리지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리버모어가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레버리지는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그가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 힘을 다스릴 수 있었는가, 아니면 그 힘에 휘둘렸는가에 있었다.
힘과 권력은 삶의 본질이다. 그러나 힘과 권력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나를 창조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고, 나를 파괴할 수도 있다.
레버리지는 힘에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치다. 의지가 단단하다면, 레버리지는 기회를 배가한다. 그러나 의지가 약하다면, 레버리지는 공포와 탐욕을 몇 배로 증폭시켜 투자자를 탐욕에 물든 희생자로 전락시킨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라고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강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힘을 자기 것으로 삼고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다. 리버모어 또한 이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갔다. 그는 힘을 긍정할 때 전설이 되었고, 긍정하지 못할 때 파멸했다. 시장은 늘 힘의 장이다. 그곳에서 중요한 것은 힘을 당겨오는 기술이 아니라, 힘을 감당하는 의지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언제나 이익을 보고 싶었다. (…) 나도 인간이기에 그런 인간적인 약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투기자들처럼 나 역시 조급한 마음이 들면 제대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 나는 레버리지 투자로 심리적 압박이 심했다. 빚을 내서 투자하면 평소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매일매일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하게 되고, 조금만 떨어져도 불안해한다.
내가 신용투자를 하고 있던 2022년부터 2023년 초까지의 몇 달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국장과 선물시장을 체크했고, 하루 종일 MTS 화면만 들여다보며 살았다. 일은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손실이 나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회복될 거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고, 수익이 나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야'라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결국 적절한 손절이나 익절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다. 레버리지라는 마법은 주식시장에서 ‘생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위협했다. 내가 레버리지에 빠진 이유는 단순히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더 강해지고 싶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때문이었다.
니체가 말한 바로 그 '힘에의 의지'가 나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자기 합리화 빠져 위대한 기업이라는 착각 속에서 종토방의 ‘좋아요’에 심취해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었던 것이다. 결국,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아닌 군중심리에 동여하여 나 자신이 불꽃이 되어 내리는 주가에 타 버리고 만 것이다.
시장은 힘의 장이다. 나는 한때 그 무대(시장)에서 힘의 노예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 무대의 본질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세계를 힘에의 의지로 보았다. 리버모어는 그 힘을 삶으로 체현했다. 나의 경험은 그 사이에서 적은 경험이 레버리지의 진실에 다가갔다. 힘은 언제나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매일 열리는 시장은 나에게 다시 물을 것이다. “너는 이 힘을 또다시 반복할 의지가 있는가?”
나는 이제 답할 수 있다.
“그래, 나는 힘을 긍정하겠다. 그러나 그 힘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겠다. 그리고 레베리지는 하락장에서 잠시 쓰는
도구 일뿐, 나의 심연에 있는 괴물에 먹어감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