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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의맛 Sep 15. 2020

1. 성장 변태

30대 초반. 여자. 직장인. 무엇이 나를 미국으로 오게 했을까

30대 초반. 여자. 직장인.


지금의 나는

직장에선 이제 신입 티를 벗어 어느덧 중견 사원의 부담감을 조금씩 짊어지고 있고,

주위에선 애인은 없냐, 결혼할 생각은 없냐는 걱정과 우려의 말들을 듣기도 하며,

이제 확실히 어린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나이가 많다고 푸념하기엔 좀 어색한 그런 시절 속에 있다.


이 범주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대학 졸업 후에 취업을 하고, 여러 번의 달콤 쌉쌀한 연애들을 하기도 하며, 야근과 회사 사람들 관계 등에 치이는 하루하루를 반복해나갔다.


대학생 때의 꿈과 열정으로 가득한 총기 넘치던 내 두 눈은 하루가 다르게 퀭해져만 갔고, 마음 한 편의 먹먹한 자리는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그저 남들 같이 살고 있는데,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다니고, 나 좋다는 남자 친구도 있고, 분명 내가 하고팠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결국 일상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뚜렷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막연히 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 반복되고 메마른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미친 듯이 하고 싶었다. 이는 내가 막연히 예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유학과 맞물려서 진행되었다. 결국 나는 당분간 휴직을 하게 되었고 다시 학생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지금 나는 미국 땅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며 공부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는 것. 이는 유학을 고민할 때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잡는다. 무엇 때문에 나는 기회비용을 포함한 이 막대한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새로운 곳에 와야 했을까. 이 질문은 무의식 적으로던, 의식 적으로던 나와 언제나 함께한다. 또한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무엇을 배우고 싶어서 간 거야? 기대한 만큼 많이 배웠어? 영어는 많이 늘었겠네! 유학 비용은 얼마나 들었어?' 등등. 남들의 시선을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에 나는 이에 대한 모범 답안들 또한 늘 생각해 두어야 한다.


절대 나는 유학 자금 따위 대수롭지 않은 금수저도 아니고, 나이 따위 숫자에 불구하다! 고 큰소리치는 대담한 사람도 아니다. 남들은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는데. 나의 통장 잔고는 소멸된 지 오래요, 줄어가는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만을 바라보면 머리 털이 삐죽 서는 듯하다. 또한 30대 초반의 여자로서 연애, 결혼, 출산에 관련한 걱정들 또한 늘어만 간다. 또한 타지에서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언어 장벽 문제 등은 이젠 익숙해졌지만 늘 나와 함께 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라는 악재까지 겹쳐 밖에 나가기 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 있다.


자, 그럼 나는 결국 내가 2년 전 한 선택을 후회하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까?

답을 내리는 데에는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당연하지."


생각을 거듭하고 거듭해도 내가 유학을 택한 이유는 그저 새롭게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서였다. 안락한 나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말 그대로 쌩고생을 해보고 싶었다. 결정을 내릴 무렵의 나이가 28, 29살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안에서 에너지는 가득 출렁이고 있는데 이를 대체 어디에 쏟아야 하는지 몰라서 늘 방황을 했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회사 일도, 남자도, 그렇다고 노는 것도 나의 열정을 쏟을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아직 20대 끝자락 청춘이 지니고 있는 일렁이는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모험을 시작했다.


글로 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예상보다도 더 힘에 부치는 시간들을 보내야 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분명히 나는 이 시간을 애정하고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무능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시간.

도전. 성장. 발전.


안전지대 밖의 새로운 장소와 환경은 이러한 단어들을 마음속에서 자주 마주할 기회를 주었다. 아직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때는 아니며 별의별 경험들을 맞닥뜨리고, 그 경험들에 부딪혀 좀 더 단단해지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곳에 서있어도 크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직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청춘의 시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돈과 결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채롭고 스펙터클한 젊은 날의 경험에 한없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고, 지금도 이 생각이 너무도 옳음을 자부한다.


앞으로 글쓰기를 통해 내가 그동안 (그렇게 원하던) 성장을 하긴 했는지, 실패한 건 무엇이고 얻은 건 무엇인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여정을 부디 소중하게 마무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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