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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의맛 Sep 15. 2020

2. 혼자의 시간

코로나 덕분에 더없을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토록 추구했던 나만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내면을 좀 더 갈고닦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늘 (맘속으로) 부르짖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지난 3월 말 급 한국행을 하였고 약 5개월 정도 한국에서 지냈다. 예정에 없던 이 기간은 역시나 행복하고 따뜻했다. 가족들과 살 비비며 있는 시간도 좋았고, 사소한 돈 걱정 없이 집에서 맛있는 것 잔뜩 먹고, 영어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고, 지인들과의 모임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역시나 불안감이 생기더라. 우선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직장인이지만 회사에 나가지 않고, 유학생이지만 한국에서 오래 체류 중이고. 그리고 점점 나태해졌다. 마음속에서 학교는 멀어져 가고, 집에서 영어와 내 할 일들에 집중하기란 신종 고문에 가까웠다. 그저 하루에 한 시간씩 밖으로 걷기 운동 혹은 자전거 타기만을 착실하게 하긴 했는데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몸을 움직이고 나와의 대화를 하는 그 시간 동안 우울감과 게으름에 빠지려는 나를 끄집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생각은 선명해져 갔다.


미국에 다시 가야겠구나.

다시 나만의 시간이 절실해졌고, 몇 개월 안 남은 유학 생활을 잘 마무리하려면 혼자 있는 것이 답이었다.


당연히 주변에선 만류했다. 무슨 사지에 제 발로 걸어가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그냥 온라인 수업으로 한국에서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나의 미국행을 말렸다. 이를 당차게 뒤로 한 채 다시 미국으로 왔다. 아쉽게도 기우는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보다 위험하다. 많이. 내가 있는 지역은 너무 코로나 전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주말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안 쓴다. 바, 카페, 식당 안에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좀처럼 이런 위험에 크게 겁이 없으며 집 안에 절대 가만히만 못 있는 나는 자주 방심하려 한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바람을 쐬려 한다. 산책을 하거나 슈퍼에 가서 소소하게 물건 사 오기(위험하다 사실)가 유일한 재미다.


이 한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방 안에서의 삶이다. 한 7,8 평 되는 방이려나. 창 밖에 들리는 찻 소리와 소음들이 내 마음을 이토록 안정시킬 수 있다니. 항상 창 문을 활짝 열어둔다.

'나는 지금 이 곳에 갇힌 것이 아니야,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잖아? 그리고 이렇게 바깥의 공기와 소리도 마음껏 접할 수 있는데 뭐 :)'

라는 긍정으로 버무린 마인드 컨트롤은 매 순간 필수다. 책상 벽면엔 나의 멘탈을 다잡을 수 있는 문구들이 적힌 포스트잇 개수가 하루하루 늘어간다.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기에 최적인 이 시간을 이겨내고, 아니 오히려 애정 하려고 나름대로 필사적이다.


생각의 전환을 하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해진 공간에서 가족이나 친구 없이 나 혼자만 있어야 하는 이러한 시기. 어찌 보면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시기이다. (또다시 겪고 싶진 않다.) 유학 전의 나라면 분명 두려워하며 우울했을 거다. 그러나 이젠 안다. 이 시간은 길지 않고, 분명 이 시간이 후에 나에게 달콤한 무언가를 가져다줄 거라는 것을. 언제 나에게만 이렇게 집중해보겠나. 내실을 다지기에 더없이 좋으며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날을 그려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령,


- 무엇보다 영어. 말로만 생각으로만 외쳤던 영어 공부. 딕테이션, 셰도잉, 리스닝 등 주구 장창 해보기.

- 그동안 영화과 석사생으로서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 민망했던 영화, 미드들 잔뜩 보기.

- 그동안의 작업들, 공부, 그리고 생각들 차곡차곡 정리하기.

  

등에 매진할 수 있는 찬스다 찬스. 사실 그동안 미국에서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한국인 지인들과 영어보다 한국어를 쓰는 시간이 더 많았고, 스트레스 줄이자는 차원으로 카페에서, 맛집에서 어슬렁거리며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나. 물론 이 시간들이 다 소모적이고 불필요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용히 내실을 다지기엔 사람들과 어울리며 외부에 소모하는 에너지가 더 많았다는 말이다. 분명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는 있는데, 정말 내공이 쌓이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시간들이 많았다.


이제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외부로 표출하기보다 내면으로 생각과 에너지를 수렴시킬 수 있는 최적의 시간.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하지 말자.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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