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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민 노무사 Dec 16. 2024

정치적 득실, 그 너머에 있는 "별의 순간"

한동훈 사퇴로 보는 정치의 어려움

"극적 긴장이 가득한 운명적인 순간이 닥치면 하루 만에, 혹은 한 시간 만에, 심지어는 단 일 분 만에 훗날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한 순간은 개인의 삶에서도 드물고 역사에서도 드물다. 내가(...) 별의 순간/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이러한 순간들이 부질없이 지나간 세월속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中)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가 사퇴했다. 

혹자는 그를 일컬어 "검사만 해봤지 정치를 모른다", "누가 봐도 대안이 없었고, 한동훈이 장악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걸 못 살리냐" 등의 말을 하고, 나 또한 그 말이 틀렸다고 보진 않는다. 다 동의한다.


그럼에도 난 다만 정치를 하는 존재로서의 한동훈이란 사람에게 다소 연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윤석열 계엄군의 체포대상이었고, 여당 대표임에도 빠르게 움직여 계엄해제를 야당과 함께 이끌었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12월 4일만 해도 여당에 대한 당 대표의 장악력은 확 높아지리라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다. 탄핵정국에서 그가 캐스팅보트를 쥐리라고 누구나 다 생각했다. 심지어 그 자신마저도. 

주식시장도 이재명 테마주가 움직일 때 한동훈 테마주도 같이 움직였다. 


그럼에도, 그런 그가 단 2주만에 당 대표직 사퇴까지 내몰리게 됐고, 이후의 정치적 생명마저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탄핵반대였다가, "조속한 직무집행정지"였다가, 다시 질서있는 퇴진이었다가, 다시 "탄핵 찬성"으로 돌아서는 과정에서 그의 오락가락을 봤고, 그 순간 그에게 잠시 아른거렸던 "별의 순간"도 끝났다. 


그는 왜 그랬을까.

사실 모두가 계산하고 있는 지점을 그도 똑같이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또한 대통령을 하고 싶었고, 더 큰 권력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탄핵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면, 다음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보기에) 범죄자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을 뻔히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도 당연히 계산했을 것이다.


그 계산이 그를 망쳤다.

선거법 1심에서 유죄를 받았고, 2심에서 통상적으로 1심 판결을 뒤집기가 어려운 상황에서(선거사범에 대한 서울고법의 최근 판결 경향성은 거의 50% 이상이 원심유지로 나타난다. 즉, 70% 정도의 확률로 시간만 때우면 이재명의 정치생명도 끝장낼 수 있다는 계산) 조금만 버티면 탄핵의 이니셔티브를 쥔 여당 대표인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이 눈 앞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명백한 탄핵사유 앞에서 시간을 끌고자 했다. 

사람들은 그의 오락가락에서 한동훈의 "위헌위법한 계엄해제"라는 초심이 아니라 "대권 욕심"이라는 사심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초심이 아닌 사심이 앞에 자리한 순간 그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점에서 그를 연민한다.

누구나 계산할 수 있는 정치적 득실을 초월하여 노선을 세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내가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처음부터 일관되게 탄핵 찬성을 해야한다고 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런 "계산"을 하지 않아야 별의 순간은 비로소 "리더"를 발견한 자신의 안목에 흡족해하며 그 찰나의 순간이 마치 영원처럼 그를 휘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계산을 초월하지 못했기에 한동훈은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산을 초월하지 못하고, 못 할 수밖에 없는 그 모습에서 나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수양은 그냥 그때 왕이 될 운명이었다."

"나는 그때 넘실대는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못했다."


영화 <관상>에 나오는 송강호의 대사가 요새처럼 자주 생각나는 시절이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보지 못한다.


10만이 모였네, 100만이 모였네 라고 하지만, 몇 만이 모였다라는 결과는 그저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이고, 

어떤 것이 사람을 모이게 하는가, "왜", "무엇"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가는 바람의 영역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람을 보지 못한다. 

한동훈도 바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는 없는 사람이란 것이 판명이 났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 한동훈에겐 연민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눈 앞의 내 이익이 분명할 때 계산하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정치란 참 알면 알수록 어렵다.


<별의 순간>은, 어떻게 보면 참 잔인하다.

순간이 내게 머물지, 휙 떠날지, 그 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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