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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ug 15. 2020

은도뇨 2

최근 어느 자리에서 현장연구 중에 라포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다. 사실 현장에서 라포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계획이나 전략 같은 것은 하나도 세워본 적이 없어서, 그 질문이 참 새로웠다. 오히려 질문을 받은 덕분에 "나는 어떻게 라포를 형성했었나?"에 대해서 기억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한가지 명확한 점은, 내가 라포라는 것을 하나의 정의된 형태로 경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이로비의 가락시장 같은 와쿨리마에서 겪은 라포, 마타투 차장들과 엮은 라포, 그리고 은도뇨 사람들과 주고받은 라포는 모두 하나의 형태로 보기가 어렵고, 또 어느 하나가 정답이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전통적으로" 상상하는 인류학자의 라포는- 아마도 은도뇨 사람들과 주고받은 '그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만나서 얼굴과 대화를 트고, 얼떨결에 그들의 사생활 공간인 집과 그들의 공동체 이웃사회를 방문하면서 나의 방문이 더 이상 손님의 방문이 아닌 시점에 닿았던 기억이 난다.


약 11개월 동안 수요일 아침은 그이들과 쓰레기를 찾고 분류하고 또 함께 걸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아침부터 일과를 함께하지 못하는 수요일에도 오후에는 꼭 필사적으로 은도뇨 사람들의 집으로 헐떨거리는 몸을 끌고 찾아갔다. 사실 어떤 순간에는 연구자의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든 웅가(옥수수가루) 한포대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마음이 묵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수요일은 K지역에 쓰레기차가 오는 날이었다. 그러니까 수요일이면 K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의 쓰레기도 길가에 나와있었다. 은도뇨 친구들은 쓰레기 차가 오기 전에 아침 일찍 "분리수거"를 하러 다녔는데, 플라스틱이나 고철을 위주로 찾으면서 책이나 옷, 남은 음식과 같이 쓸만한(?) 것들을 챙겼다. 나는 차마 그 분리수거 업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했는데, 그저 자잘한 것을 들어주고 말동무를 하면서 그 수요일 아침의 '순례'에 참여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맡은 일은 새참을 챙기는 것이었다. 늘 그랬겠지만 아침식사를 챙기지 못하고 (아니, 아침을 먹는 것이 그들의 일상에 존재하기나 했을까) 그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200실링 정도하는 빵이나 만다지(도넛일종), 또는 차파티를 사가지고 가는 일이었다. 11개월 내내 그렇게 음식을 사가지고 갔는데, 은도뇨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내게 음식을 사달라는 말을 한적이 없다. (케냐에 있는 동안 내게 차를 사달라, 빵을 사달라, 밥을 사달라 등등 조금이라도 삥을 뜯는 것 같은 말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 관리나 마타투 정비소 사람들 정도였던 것 같다)


쓰레기를 다 모으고, 그걸 팔러가기 직전에는 공터에 앉아서 뭔가 경건한 분위기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처음에는 빵이든 차파티든 내가 펼쳐놓아도 아무도 먼저 손을 대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V나 S가 "타이, 니 손이 깨끗하니 니가 집어줘야지"라고 말을 해주면 그제서야 나도 아차 싶어서 내 손으로 신문지나 지고 있던 노트의 종이를 찢어 하나하나 싸서 배식(?)을 하곤 했다. 나중에는 물이나 물티슈를 가지고 가서 손을 닦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대부분의 배식은 '깨끗한 손을 가진' 내가 계속했던 기억이 난다.


음식을 먹고 쉬면서는 그날 발견한 잡지나 신문을 함께 읽기도 했고, 내가 스와힐리어 공부를 하면서 읽는 동화책을 같이 읽으면서 웃고 떠들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나이로비 곳곳에 고급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을 때여서, 신문이나 잡지에 관련 광고들이 정말 많았다. 다들 상상도 못할 금액의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사진으로만 쳐다봤는데, 그 와중에 그 집들을 짓는데 쓰는 자재들을 운반하는 거대한 덤프트럭들이 지나가면 길가에 앉아 있던 우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콜록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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