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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ug 10. 2020

은도뇨

비행기를 타기 전 마지막 수요일에 인사를 하러 가보니 I와 M이 보이지 않았다. I는 다친 손가락의 염증이 너무 심해서 나오지 못했고 M은 경찰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단 오후에 I의 집으로 찾아가니 그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왔다며 초췌한 몰골을 끌고 나온다. 옆에 앉아서 나란히 찍은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손가락이 엄청나게 퉁퉁 부었다. 내가 왜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지 않았을까.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다. 파상풍은 아니었을까... 다 나아서 다시 일하러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5년이 넘게 지나서 그 손가락이 생각나서 뭔지 모르게 두렵다.

M은 결국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다. 사유지 침입으로 끌려갔다고 했는데. 사실 그가 원한건 그 사유지에 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다. 관리인이 실수였는지 앙심이었는지 신고해버렸다고 했다. 새로운 동네도 아니었을텐데. 그 쓰레기를 훔치다가(?) 그는 구치소 같은 곳에 갇힌 것이다. 비행기는 금요일이니, 목요일에 면회라도 가면 안되겠냐는 어리석은 소리를 하니 모두가 므중구(백인)인 니가 가면 더 큰일이라고 말렸다. 마침 가지고 있던 큰돈은 없어서 수녀원에 돌아가 천실링 지폐를 가지고 M의 절친인 V를 만나 돈을 전달했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몰랐지만, 그저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금요일 오후 조모케냐타 공항에서 보딩하기 직전 V에게 전화를 했다. M을 잘 보고 왔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은 못하고 그냥 울었다. V가 담담하게 말했다. 와이 유 크라이, 돈 크라이.

그리고 내가 날아간 곳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의 인류학회장이었다. 거기서 나는 나이로비와 케냐에 대해 아는척 떠들면서 은도뇨를 잊어버렸던 것 같다. 아니 봉인해버렸던 것 같다. 후회스럽다.

은도뇨... 그 동네의 이름이다. 키쿠유어로 파는 곳이라는 뜻이었던가. 수요일이면 작은 옥수수가루 한포대를 백팩에 넣고 은도뇨의 장터를 지나 무허가 집들이 빽빽한 뒷골목을 숨을 몰아쉬며 돌고 돌아 찾아가서 만나던 친구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이들에게 5년 동안 연락 한 번 못했을까. 나는 왜 이 기억을 봉인하고 모른척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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