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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Oct 03. 2020

말라리아는 아니었지만

나를 치료한 것은 약이었을까 국물이었을까

2011년에는 6월부터 약 1개월 반 정도의 시간을 케냐에서 보냈다. 그보다 6개월 앞서 박사과정의 첫겨울방학을 나이로비에서 보냈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이로비에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름방학에도 연구주제를 찾으러 나선 참이었다. (뭔가 복잡한 소리 같지만, 나는 나이로비에서 뭔가 운명 따위를 느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그러려면 연구주제가 필요했고 그래서 계속 가다 보니 정말 연구를 하고 있었더라는......)


어딘가 그 시절의 노트가 있을 텐데 다시 들춰보면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가 자세히 써져있겠지만, 지금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것이 생각보다 별로 많지가 않다. 심지어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가 2011년 여름의 일인지 2012년 여름의 일인지도 헷갈리는 것 같다... 헐. 두 번 다 나이로비에서 사방팔방 쫓아다녔던 시간이라 그런가. 수년만에 노트 두 권을 들춰보는 것이 좋겠다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서설이 길었는데 하여튼 오늘 떠올린 기억은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밤새 몸이 너무 아팠고 설사와 오한 두통과 열에 시달려서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케냐에 있는 동안 그렇게 아팠던 것이 처음이라 무서웠다. 뭔가 직감적으로 이건 말라리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로비는 고도가 높아서 말라리아모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말라리아 기생충을 가진 사람을 문 모기를 통해서는 말라리아가 전파될 수 있다고 어떤 이가 얘기해 준 기억이 났다. 실은 그 이야기를 해줬던 이도 말라리아가 흔한 지방에서 나이로비를 방문한 친척을 집에 재웠더니 자신도 말라리아에 걸렸었다고 했기에 나도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면서 그런 모기에 얻어걸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몸이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는데. 어쩌다 보니 그 몸을 이끌고 그때 이미 한국 수녀님들을 통해 인연을 트고 있었던 베네딕토 수녀원의 성 오딜리아스 진료소로 기어가듯 찾아갔다.


진료소에 가서 대뜸 내가 말라리아인 것 같다고,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곧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말라리아가 아니었다.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몸은 너무 아팠고 그런데 또 말라리아는 아니고. 나는 뭔지 모르게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진료 담당자는 말라리아는 아니지만, 말라리아의 모든 증세를 겪고 있는 내가 좀 걱정되었는지, 말라리아 지역에서 싸게 살 수 있는 N사의 유명 치료제를 주면서 혹시 모르니 가는 길에 복용은 해보라고 했다.


사실 말라리아는 예방약이라는 것이 정말 예방을 해주는 것은 아니고 독한 치료제를 미리 먹는 식으로 예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그 약들은 부작용이 꽤 있어서 나도 먹고는 악몽을 꾸거나 한 적이 있어서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N사의 약은 좋은 평을 읽은 적이 있어서 뭔가 안심이 되었고, 몸이 너무 아파서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그 약을 먹으면서 거의 24시간이 넘은 비행길에 올랐다.


에티오피아를 찍고, 다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몸상태를 느꼈는데. 그때 내 몸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건 뜨끈한 국물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방콕에 도착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다행히 넉넉했던 환승 대기 시간 동안 국물을 파는 음식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뭔지도 모르고 그림만 보고 국물이 있는 국수를

하나 시켰는데- 알고 보니 그건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뚬양꿍 스타일의 국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물이 고팠던 나는 그 국물과 국수를 깨끗이 비웠다. 뜨끈한 국물이 위장에 퍼지면서 느꼈던 그 치유의 온도가 지금도 기억난다. 약으로는 부족했던 치료가 완료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이렇게 국물을 좋아하는 내가 왜 국물 요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현장연구를 하지 않았던가-”하는 우스운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후후.


돈을 내고 샤워를 하는 곳에서 여독에 찌든 몸을 씻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비 내리는 방콕의 하늘이 보이는 유리 천장 아래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더러워진 내 트래킹 슈즈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해 예비연구 여행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글이 뭔가 산으로 간 것 같은데- 내가 아팠던 이유는 역시 말라리아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말라리아 약과 그 뚬양꿍 같은 국물 덕분에 나았지 않았을까. 위약효과였을지도 모르고 뭔가 비과학적이지만 또 뭔가 믿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그런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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