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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ul 18. 2021

나의 세탁소 방랑기

마음에 쏙 드는 세탁소 찾기


작년 3월 난리통에 전세 계약 만료로 이사를 했다. 집도 별로였고 셔틀버스 타는 곳에서 멀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집을 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세금은 한정이 되어 있었고 그에 맞는 집이 많지도 않았던 터였다. 집을 구한 이야기는 다른 글로 다시 풀어야 할 이야기라서 여기서 멈추고 오늘은 일단 맘에 쏙 드는 세탁소를 찾은 이야기부터 시작하려도 한다. 어쩌다 보니 그런 순서가 되었다.  


아름다운 시인이 우리가 모두 아는 시를 지은 마을에 이사를 왔다. 이전에 살던  보다 넓고, 무엇보다 볕이  들어오고,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셔틀버스를   있는 곳이다.  년은  살고 싶은 그런 동네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나서 나를 보면 반가워하는 주인들이 운영하는 빵집, 카페, 그리고 반가워하지는 않아도 단골로 맞아주는 편의점, 약국, 수선집 등이 하나하나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몸에 익은 산책길과 골목골목의 지름길도 맘에 든다.


그런데 한 가지 최근까지도 묘하게 방황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탁소였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세탁소 겸 수선집이 정말 딱 맘에 드는 곳이었다. 운영하는 할머니 사장님이 세상 꼼꼼하게 잘해주셔서 2년 내내 다른 세탁소를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 이사 와서는 좀처럼 맘에 드는 세탁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옷을 맡길 때마다 이상하게 찜찜한 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세탁소를 찾아갔다. 가격이 다소 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워낙 처리하는 세탁물들이 많아 보였고, 동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하여 나도 그냥 여기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두어 달이 지났던 어느 날인가 셔츠 하나를 맡기러 갔던 날이었나. 50대 정도의 세탁소 남자 사장님이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어느 젊은 여성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는 문간에서 다른 아주머니 손님과 함께 서서 사장님의 불같은 메시지를 엿듣게 되었다.


“싼 데만 가려고 하고 말이지!!!”


그러니까 그 상황은- 그 여성 분이 외투나 패딩 등 밀린 겨울 세탁물을 한가득 가지고 왔다가 생각보다 비싼 드라이클리닝 비용에 놀라서 다시 옷을 싸서 가져가던 중에 사장님이 분노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나는 순간 맡기러 같던 옷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아니 자기 예산에 안 맞으면 그냥 갈 수도 있는 것이지, 딱 봐도 20대 초중반 밖에 안된 사회초년생 또는 학생일 수도 있는 사람이 비용 때문에 세탁물을 못 맡기겠다는 것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었을까. 사장님이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그 세탁소는 주변 사람들이 맡긴 세탁물로 넘치고 있는데 이 젊은이의 세탁물을 놓친다고 경영이 힘들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젊은이가 떠난 후 사장님은 얼굴을 싹 바꿔서 세상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와 나의 세탁물을 접수했다. 나는 정말 어정쩡하게 셔츠를 맡기고 돌아왔는데 사흘 후 그 셔츠를 찾은 이후에는 그곳으로의 발길을 끊어버렸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세탁소라 매일같이 그 앞을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손님으로서의 인연은 그날로 끝이 났다.


내가 대안으로 찾은 세탁소는 몇 골목 더 지나서 있는, 그래도 편하게 걸어서 다닐만한 곳에 있는 프랜차이즈 세탁소였다. 사실 처음에도 이곳을 고려하긴 했었는데 프랜차이즈라서 약간은 편견(?)을 가지고 선뜻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앞의 세탁소 사건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이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사장님이 인사도 반갑게 해 주시고 뭔가 꼼꼼한 인상이 괜찮다는 생각에 계속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세탁소도 뭔가 마음에 꼭 들지는 않았다. 일단 프랜차이즈라 옷이 그곳에서 세탁되지 않기 때문인지 옷을 찾아왔을 때 딱히 깨끗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집합된 곳에서 혼합되지 않게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조그만 표식이 여기저기 스테이플러로 붙어있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도 귀찮았고, 비닐도 너무 과다하게 개별적으로 씌어져 있어서 환경보호 면에서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그 엄마 사장님이 사라지고 다른 사장님이 이 가게를 이어받으면서 서비스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세탁소들은 뭔가 거리가 애매한 위치라 과감하게 옮기지는 못하겠고, 또 가던 데를 가게 되는 관성에 그대로 그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거의 1년은 다닌 것 같은데…… 한 달 정도 전에 나의 세탁소 방랑기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생겼다.


올봄부터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나면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 루트를 개척했다. 여기저기 시도를 해보다가 고정적인 루트를 만들었는데 혼자 괜히 기분이 좋아서 누군가 놀러 오면 꼭 보여주고 싶은 그런 루트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그 루트의 후반부에, 그러니까 집에서 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세탁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내공이 있어 보이는 오래된 외관이었는데 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묵묵하게 다림질을 하는 작고 깡마른 체구의 사장님은 “난 평생 이 일로 먹고살았고 자식도 키웠으며 앞으로도 이 일을 열심히 할 거요”라는 메시지를 몸으로 뿜어내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지나다니기만 했고, 그 위치가 산책로 후반부여서 불편하게 옷을 들고나갔다가 맡길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에코백 하나에 세탁물을 쑤셔 넣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세탁소에 들러 그 옷들을 맡기고 슬쩍 사장님을 관찰했는데, 역시나 말 한마디 없으셨으나 옷을 다루는 능숙함이 느껴져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사흘인가 지나서 또 산책길에 들러 세탁물을 찾았다. 일부러 흰옷으로 갖다 맡겼었는데 옷이 정말 말끔하고 깨끗하게 세탁된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 정도면 합격이다” 싶어서 출근하며 입는 블라우스니, 정장 바지 등을 차근차근 맡겨봤다. 그리고 하나같이 맘에 들게 세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오~ 이제 정말 여기에 정착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날-


그러니까 이번 주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재택근무 비율을 지키는 것이 강화되어서 더운 집에 앉아 탁상 선풍기를 두 개나 양 쪽에 틀어두고 오전 내내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몸이 너무 찌뿌둥해서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점심을 대강 먹고 남은 시간 동안 산책을 할까 싶었는데 날씨가 정말 너무나 더워서 평소의 그 산책 루트를 다 돌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맡겨둔 세탁물이나 찾으러 가자는 생각에 산책 루트 반대로 걸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세탁소에 들어섰다.


평소에는 눈도 안마주치는 사장님이 옷을 건네며 내 얼굴을 쳐다보고 말을 걸어주셨다.  


“더운데 여기까지 왔어?”


말을 걸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면서 대답했고 사장님과 나 사이에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 집에서 일하다가 점심시간이어서요~”

“재택근무였구나?”

“네 ㅎㅎ”


그러고 나서 사장님은 건네주던 옷 중에 하얀 블라우스를 따로 꺼내서 여기저기 손가락으로 때가 잘 타는 부분들을 건드리면서 본인이 신경 써서 세탁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에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이건 그냥 집에서 물빨래 해.”


그건 대단히 비싼 옷도 아니었고 물로 빨 수도 있었는데 세탁 방법은 또 드라이클리닝이라 약간은 망설이는 마음으로 매번 세탁소에 맡기는 옷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사장님이 대신 내려주신 결론에 웃음이 터졌던 것 같다.


어쩌면 사장님 본인도 세탁이 힘들어서 그렇게

권해준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맘에 쏙 드는 세탁소를 찾고 말았다.


이제 나의 세탁소 방랑은 정말로 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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