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득해지다
한국에서 사표를 내고 이제 정말로 목표를 완전히 이루러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빠 엄마의 표정은 "드디어 올게 왔구나" 싶으면서도 복잡해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라이름을 말했을 때 엄마는 거기는 전쟁이 난 곳이 아니냐며 약간은 높은 톤의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일단 안심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아니 전쟁은 아니고..."까지 말하다가 뭔가 의미 없다는 생각에 정치상황을 설명하면서 대충 얼버무렸던 것 같다.
오늘은 엄청난 폭우를 뚫고 배를 타고 진흙과 사투를 벌이며 걷는 것인지 기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이 나라의 실향민들이 있는 곳을 다녀왔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변한 듯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열악한 상황에 대해 비판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11살 소년이었는데 이제는 20대 청년이 된 이를 붙잡고 여러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빵 하나 챙겨주지 못하고 1시간이나 질문을 던진 나에게 "내 생각을 물어봐 주어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목이 메어서 몇 초 정도는 눈에 크게 힘을 주고 "슈크리야"만 연신 반복했다.
돌아오는 진흙길 위에서 앞으로 뒤로 대체 몇 번을 넘어졌던가. 이동진료소가 오는 날이면 함께 일하는 실향민 아저씨가 내 한 팔을 꽉 붙잡고 일으켜주며 배까지 한참 동안 함께 걸어주는데, 또 그 와중에 떨어진 내 전화기에 묻은 진흙을 입고 있던 롱지로 싹싹 깨끗이 닦고, 내가 잘못 신고 간 만 원짜리 쓰래빠가 불편해 보인다며 더 튼튼해 보이는 자기 거랑 바꿔 신자고 하니 나는 그저 오만가지 생각이 들 뿐이다.
밀물이 들어오는 때라 동료들이 탄 배는 지체 없이 먼저 떠나고 나는 늦어지는 바람에 기다리던 리더와 짐을 실은 배에 겨우 걸터앉았다. 팔다리에 묻은 진흙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점점 멀어지는 캠프를 바라봤다. 다음 싸이클론에는 무사할 수 있을까. 뭔지 모르게 나 자신의 마음이 아득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진흙을 씻어내고 랩탑을 열어보니 현장방문으로 지역을 이동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지나간 어제가 난민의 날이었다. 내 마음은 아직도 그저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