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상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7년째 운영하고 있는 작은 카페에는 제멋대로 생긴 나무 테이블이 5개 놓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외다리를 가지고 있어 팔을 괴면 괴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흔들리는 가장 오래된 테이블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 책상은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방향에 서있다. 한가롭고 볕이 예쁜 날에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사진을 나서서 찍어준 일도 적지 않았다. 특히 혼자 온 사람들에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반짝이는 머리칼과 집중하는 눈빛과 어둡고 따뜻한 색의 책상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사진을 받고 수줍게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이 참 좋았다.
어느 저녁이었다. 늘 두툼한 노트를 펼쳐 열심히 무언가를 필기하다가 돌연 가만히 고개를 떨군 채로 사색을 하고, 또 열심히 적곤 하던 이가 웬일로 빈손으로 카페에 들어왔다. 미안한 표정으로 펜과 종이를 빌릴 수 있느냐고 부탁하는 그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언가'에 정말 진심인 사람인 것 같았다. 달랑 종이 한 장을 들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아 빽빽이 글을 써 내려가던 그는(숨을 고르는 듯 중간중간 멈추기도 하였다.) 약 한 시간 후 정중한 인사와 함께 퇴장했고,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정리하던 나는 책상 한구석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어두운 내부, 노란 조명이 비치는 오래된 책상의 윗면. 아무 받침 없이 얇은 종이 위를 꾹꾹 눌러 적은 탓인지 그가 적은 문장들이 그리 튼튼하지 않은 책상 상판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작은 글씨, 조금 악필인듯하고(순전히 내 기준이지만) 힘이 많이 들어간 글씨. 책상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눈에 힘을 주어 그가 남긴 글을 읽으려다가 그만뒀다. 몰래 비밀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문득 오래된 책상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기쁘고 따뜻했겠다.
해가 지고, 반짝이던 햇볕이 사라진 저녁에도 언제든 나를 찾아주는 사람. 힘을 주어 팔을 괼 수도 없는 가장 오래된 책상. 그리고 그가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문장들의 흔적.
다음에 그가 온다면 꼭 말해줘야지. 여기 책상 위에 당신이 남긴 자국이 있다고. 이렇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면 보인다고. 혹시나 부끄러울까 봐 하는 말인데 일부러 읽어보지는 않았다고, 그런데 어떤 글이었나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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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3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그다음 방문에 나는 정말 그 자국을 보여주었다. 그는 조금 신기해하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책상 위를 덧그렸다. 그 시절 그가 이곳에서 열심히 적었던 글들은 단편 소설집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카페의 책장 한편에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고, 또 간다. 이름을 알게 된 사람도 있고 직업을 알게 된 사람도 있으며 아무것도 모르지만 주고받는 눈인사가 익숙해진 사람들이 오늘도 문을 열고 닫는다.
마른행주로 오래된 책상을 닦다가 문득 3년여 전의 일이 생각났고 그다음엔 이곳에서 일어난 기쁘거나 슬프거나 신기했던 많은 기억이 줄줄이 꼬리를 물며 떠올랐다. 그래서 또 문득,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7년,
점점 희미해지는 날들을 더듬으며 여름의 초입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