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항해의 시작, 모든 것이 부족하다.(1)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앞으로 뭐하고 싶으세요?

by 유창석

2016년 2월 중순 어느날,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의 착수보고회를 하고 있어 전화를 받지 못했다. 다음날 다시 통화를 하며 나눴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배 :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죠? 형 대학원이 전공이 뭐였죠?"

나 : "문화콘텐츠 전공했지. 안그래도 논문 인쇄본도 나왔는데 한 부 줄게. 겸사겸사 오랜만에 만나자."


후배 : "네 그래요. 아 그리고 형 대학원 가기 전에 다녔던 브레인파크에서 뭐했죠?"

나 : "정책연구랑 국내외 교육 기획하고 운영하는 거 했었지. 너도 그때 우리 회사 와서 단기 알바 했었자나.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알고 지낸지 6년이나 넘었는데 갑자기 왜 묻는거야"


후배 : "아니. 제가 지금 아는 선배랑 전북혁신도시에 있어요. 근데 여기에서 첫 팀원을 채용하고 있는데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해서요. 내가 형이 뭐했는지 정확히는 모르는데, 그동안 내가 알고 지낸 사람중에서 창석이 형이 가장 여기에 적합할 거 같고, 회사 대표님하고도 잘 맞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나 : "뭐하는 회사인데?"


후배 : "음... 여러 사람이 같이 사무실을 사용하고요, 구글드라이브, 잔디 같은 협업툴 사용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스마트워크 교육도 하고요. 그리고 창업 관련한 강의나 네트워킹 같은 행사를 기획해서 열기도 해요. 죄송해요 저도 여기 와서 사무실 사용한지 두 달 밖에 안됐어요. 제가 여길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게네요."


나 : "거기 코워킹스페이스니? 서울에 마루 180 건물 1층에 있는 마이크임팩트스튜디오처럼 사무공간도 제공하고, 스타트업이나 사람들이 배우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기획해서 운영하는거야? 근데 그게 지역에도 있니? 나는 대학원때 마이크임팩트랑, 마루180, 텀블벅, 타이트인스티튜드, 와디즈가 관심있는 회사여서 서울에도 종종 가서 행사 참여하기도 하고, 팔로우 해서 소식 받아보고 있었어."


후배 : "아~~ 형 맞아요. 코워킹스페이스에요. 역시 이런 모델을 알고 있었네요. 형이 말한 회사들이 뭐하는 곳인지 제가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형 졸업하는데 일할 곳 찾았어요? 여기 대표님이랑 형이랑 가치관이나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비슷할 것 같은데..."


나 : "어 다음주 월요일부터 익산문화재단 출근하기로 했어. 대학원때 전주국제영화제로 논문 쓰고, 지역, 문화콘텐츠 관련 공부하고 일하면서 문화재단에서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해보기로 했어. 성남아(후배) 거기 회사 홈페이지나 블로그 같은거 있니? 궁금하네. 지역에서 코워킹스페이스를 기획해서 시작하다니 정말 재미있네."


후배 : "네 블로그 있어요. 링크 전달할게요. 스페이스코웍 블로그 에요 확인해보세요. 근데, 여기 공간 방문하고 대표님이랑 얘기만이라도 나눠봐요. 이미 월요일부터 출근할 곳이 있다고 해서 아쉽긴 한데, 아~ 진짜 내가 생각했을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나 : "야~ 너 내가 무슨 회사 다니고 어떤 일 했는지도 모르면서 뭘 잘 맞아. ㅋㅋ 아무튼 블로그 보고 연락줄게. 이런거 있으면 미리 말하지 뭐야~~~ 아무튼 생각하고 연락줘서 고마워"



과거

<대학원에 오기전 나의 생활> :


대학생땐 교직에 몸을 담고 싶어서 교직이수와 평생교육사 과정을 이수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교직이수한 일반사회 교과목은 전국에서 30명 이내 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사실상 시험을 원패스 하거나 오랜 수험생활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관점을 바꿨다. 그동안 내가 관심있던 일, 추구했던 가치와 비슷한 곳에서 일을 해보자. 그러다 우연치않게 대학 4학년 2학기 사회학 수업에서 만난 교수님(나중에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된다)의 추천으로 서울에 있는 (주)글로벌앤로컬브레인파크라는 정책연구, 국내외 연수 교육 회사에서 사회 생활을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브레인파크에서 1년간 있으면서 관점이 매우 넓었졌다.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있어 브레인파크는 일도 하고 월급도 받고,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견문도 넓히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선배들을 보며 나의 미래와 커리어를 어떻게 설계해 나가야 하는지 스스로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브레인파크에 있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은, 국가가 이렇게 운영되는 시스템이구나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일상 생활에서 정보를 제공받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은 공공기관, 연구기관, 대학 등 사회의 시스템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집단의 사람들이 국내외 교육 연수를 통해 다양한 사례를 접하고 정책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간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업무를 진행하며 발견한 것은, 나의 결핍이었다. 나는 제 2 외국어를 할 줄 몰랐다. 나는 그 흔한 이메일 하나 혼자서는 쓰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 오는 전화 하나 제대로 받지 못했다. 나는 공공기관, 출연기관, 대학 사업단 등 사회의 구조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인터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서 수주해서 작성하는 보고서의 한 챕터도 작성하지 못했다. 나는 전문 연구분야가 없었다.


물론, 위와 같이 생각했다고 해서 매일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나의 부족한 점만 생각하면서 한탄하진 않았다. 더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했엇다. 회사에서 지난 5년간(2008~2013) 수행했던 수많은 국내외 교육, 정책연구 보고서가 수두룩했다. 나는 결심했다. 이 보고서를 다 읽고 이해해서 빠른 업무 적응과 성과를 창출하는데 기여하기로.


일을 하다보니 실무에서 학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가능한 모든 것을 메모하고, 장면을 기억했다. 함께 출장가는 곳이 있다면 미리 알아보고, 명함을 주고 받으면 가능한 한 번에 소속, 이름을 외웠다.(원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매우 유용했다) 그리고 선배들이 찾을땐 언제나 OK였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내가 할 수 것이었고, 그런 태도조차 없다면 나는 성장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나를 찾는 선배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막내들의 일은 태도만 성실하다면 함께 일 할 수 있다. 나도 아는 것이 늘어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나 혼자 정책연구 보고서에 들어갈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하고, 자료를 정리해서 선배에게 전달했다. 악착같이 조사하고 인터뷰를 하고 정리했다. 가능한 모든 것은 녹음을 하고 다시 들으며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만 정리를 했다. 야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야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이 회사에서 밥값을 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나름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다보니, 내가 맡은 과제에 대해 더 관심이 갔다. 당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콘텐츠 융합형 교육 활성화 지원사업 개선방안 수립 연구>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전국에 있는 문화콘텐츠 대학에 융합형 교육 과정을 운영했었고, 이 정책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 지난 5년간의 과정을 정리하고 앞으로 운영할 정책 개발을 위한 기초조사였다. 학부생때도 일반사회 교직이수를 했고, 다양한 정책과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내가 맡고 있는 연구과제가 재미있기 시작했다. 더 알고 싶어졌다. 나도 대학원이라는 것을 가서 나의 커리어를 피벗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입사한지 1년이 안되었지만 회사의 대표님을 포함한 많은 선배들에게 인정 받고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갈증이 느껴졌다. 문화콘텐츠 분야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것 같았다.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갖고 회사 내 선배들과(대표님 포함. 지금도 너무 감사해서 종종 찾아뵙고 연락을 주고받는다)상의를 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현재

후배와 통화를 마치고 스페이스코웍 블로그를 천천히 살펴봤다. 이제 창업한 지 3개월된 회사였다. 지역에서(전북혁신도시)코워킹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한 것은 새로우며 필요했던 도전이라 생각했다. 지역에서 학부 생활을 경험한 나는, 수도권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더 다양한 시도를 많아지고, 직간접적인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10분 정도 블로그를 살펴보고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나 : "성남아, 너가 전달한 블로그 잘 봤어. 거기 회사 주소 좀 알려주겠니? 지금 가면 되니?"

후배 : "어? 형 지금이요? 음... 잠시만요 제가 여기 회사 대표님께 일정 가능한지 물어보고 연락 다시 할게요. 형 근데 이렇게 빨리 판단하고 움직여요?"


나 : "야 어차피 첫번째 팀원 구하는 거면 급한 거 아니야? 괜히 애매하게 말하는 것보다 빨리 만나서 얘기 나누고 할지 말지 얘기 나누면 되잖아"

후배 : "형 근데 월요일부터 출근할 곳 있다고 했잖아요. 괜찮아요?(당시 시간은 금요일 오후 3시)"


나 : "ㅎㅎ 웃기네. 내가 무슨 월요일부터 스페이스코웍 출근한대? 그리고 내가 거기에 출근하겠다고 하면 대표님이 알겠다고 하겠니? 나나 대표님이나 서로 뭐하고 살아왔는지,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얘기를 나눠야 무슨 결정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빨리 일정 알아보고 연락줘~"


잠시후,


후배 : "형 일정 가능하대요. 근데 저녁 미팅이 있어서 우선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시간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주소는 전북 완주군 이서면 안전로 139 1층이에요"

나 : "그래 알겠어. 잠시 후에 만나요"


그렇게 나는 대학원 연구실에 있다가, 난생 처음 전북혁신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