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섬으로 떠나다(3)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오사카성의 화려함, 길거리에서 먹었던 샥스핀으로 만들었다던 라멘? 그리고 걷다가 길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힌 또래 남자아이가 반자동적으로 뱉은 '스미마셍'.
열두 살 때 처음 일본을 가봤던 내 머릿속에 남은 기억의 전부다. 오사카성을 보고 멋지다 생각했던 초등학생은 이제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고 해도 분명 다녀온 곳인데 일본에 대한 기억이 저게 전부라니 허망하기도 하다.
그때 당시 남자아이 치고는 사춘기가 빨리 왔던 나에게 관심의 대상은 바깥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여행지를 일본으로 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방문 때의 기억이 거의 없기에 사실상 첫 방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오키나와는 원래는 일본이 아니었다고 한다. 검색을 해보니 원래는 류큐 왕국이었으나 일본 제국이 1879년 '류큐 처분'을 통해 강제로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시킨 곳이며, 일본어 이전에 사용되던 류큐어 조차 1940년부터는 일본 정부가 사용을 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어딘가 모르게 역사적 동질감이 느껴졌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정부에 대한 반감(?)이 들었다. 여권 스마트패스 등록 때문이다. 안내 설명대로 해도 도무지 되지가 않았다. 여러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보고 각종 팁을 참고해 봐도 등록이 진전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참고로 내 휴대폰 기종은 아이폰 SE3세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과 같이 여권과 휴대폰 상단 부를 수직이 되게끔 맞닿게 하고, 화면에 보이는 파란색 버튼을 연타로 눌러가면서 등록을 시도해야 한다. 버튼을 계속 누르라는 안내도 되어있지 않고, 다른 기종의 휴대폰은 딱히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진행이 되는 것 같은데 내 폰은 그렇지 않았다.
숙소 예약을 힘겹게 해서 그런지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었다. 고작 이 정도만 해도 스스로가 굉장히 성장했다는 착각(?)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모르긴 몰라도 여행을 많이 다녀보는 사람들은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매우 뛰어날 것 같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인천공항 냄새. 러쉬나 교보문고처럼 떠오르는 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천공항만의 냄새가 있다. 후각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도 포함된 냄새랄까.
떠나려는 자들과 돌아오는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모두 뒤섞인 그 냄새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설렘이 가득 찬다. 그곳은 내게는 일상과 차단된 공간으로 다가온다.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떠나온 곳을 잊는다.
비행기가 떠나고 두 시간 남짓 됐을까. 창밖으로 펼쳐진 진풍경에 목이 빠져라 창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새파란 대양 위에 터키옥색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려놓기라도 한 듯했다. 비행기표를 끊게 한 '장본인'이 저기 있었다. 일본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어서 오라며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입국 수속을 밟고 수하물을 찾고 나니 식사 때가 어중간하게 시간이 붕 떴다. 마음은 1초라도 빨리 오키나와 공항을 벗어나 오키나와 도착을 공식 선언하고 싶었다. 인천공항에서는 공항이라는 존재가 여행으로의 시작을 안내하며 두고 온 일상과의 차단막 역할을 했지만, 이곳에서는 오키나와에 왔는데도 아직 오키나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막힘이 느껴지게 하는 게 새삼 신기했다. 내가 두고 온 일상도 같은 날 인천 땅을 밟은 어떤 관광객에게는 여행이었을 테지.
때마침 날씨도 호랑이가 장가라도 가는지 뙤약볕과 소나기가 동시에 춤을 추고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가기도 애매했다. 결국 공항에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짝꿍이 미리 찾아본 식당에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고 했는데 그 식당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비슷해 보이는 곳으로 갔는데 그곳이 그 식당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가. 됐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됐지.
일본은 우리보다 변화하는 속도가 늦다고 들었다. 장인 정신도 발달한 곳이고,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의 대표 국제공항인 인천공항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데도 '비건 식당' 하나가 없다. 하다 못해 '비건'이라고 적힌 메뉴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기대도 안 한 일본에서 비건 메뉴를 이렇게 많이 파는 곳이 있다는 게 사뭇 반가웠고, 또 감사했다. 아리가또!
오키나와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음식은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평소에 아무거나 잘 먹는 내 입맛에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감사라는 양념을 더하니, 혀에서 느껴지지 않는 특별한 맛이 느껴졌다. 감칠맛 대신 감사의 맛이었다.
공항 로비에는 누구나 와서 치라고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어느 일본인 청년 한 명이 히사이시 조의 노래들을 꽤나 수준급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 음악 덕분에 일본에 온 것이 더 실감이 났다. 비록 연주 속도가 빨라서 체할 뻔했지만 (혹시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드디어 공항문이 열리고 밟게 된 오키나와의 땅은 습한 공기만큼이나 뜨겁고 끈적거렸다. 8월에는 돈을 주고 가라고 해도 오키나와에 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들었다. 7월인데도 날씨가 후덥지근하여 동남아에 온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항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야자수 나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인도에서도 '좌측통행'이 기본이고, 자동차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헷갈릴까 봐 은근 걱정 했는데 보행자들을 먼저 배려해서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일본의 교통 문화 덕분에 큰 걱정 없이 잘 다닐 수 있었다. 선팅도 대체로 색이 옅어서 양보를 받을 때마다 한국산 감사의 눈빛을 운전자에게 실어 보냈는데 어떻게, 잘 가닿았으려나 모르겠다.
일본은 오행상 화(火)의 나라이며, 화는 인의예지신 중에 '예'에 배속된다. 그만큼 일본은 예의의 나라로 유명하다. 오키나와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도로에서 과속하는 차들이나 짜증 섞인 경적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거다. 횡단보도 신호등도 꽤나 여유로운 편이었다. 그래도 횡단보도가 꺼지기 직전까지 달려서 건너는 '육상선수' 들이 여기에도 있는 걸 보고 역시 사람 사는 게 어디든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Coffee Okay?"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커피 괜찮으시냐고 묻는다. 웰컴 드링크인가. 역시 예의의 나라답다.
씨익 웃으며 짝꿍에게 아이스로 먹겠냐고 묻자,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내 팔뚝을 때린다.
"카피 괜찮냐잖아, 여권 스캔 뜬다고"
아쉽다. 아이스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부끄러운 마음에 키를 받자마자 숙소로 후다닥 올라갔다.
숙소에서 잠깐 숨만 돌리고 주변 산책을 나섰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날씨는 어김없이 방콕인데,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일상과 다른 행동을 어쩐지 더 쉽게 하게 된다. 근처에 해변이 있다고 해서 가장 먼저 그리로 향했다. 숙소에서 도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미오우에 해변.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해수욕장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시가지와 해변 그 사이 어드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지나가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본 시가지에는 당연히 볼 수 없을)웃통을 활짝 까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태닝 하는 사람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셀카를 연신 찍어대는 사람들. 바다 위로 놓인 고가도로가 아니었다면 그곳이 도심 근처라는 것을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헤엄이라도 쳐볼 걸, 산책만 하러 가느라 수영복을 못 챙긴 게 지금도 참 아쉽다.
숙소 주변의 오키나와 골목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때가 다가왔다. 그래도 일본에서의 첫 밤인데 그냥 식당 대신 선술집을 가고 싶었다.
어디를 가겠다고 정해놓고 오지 않았기에 즉석에서 구글맵을 켜고는 숙소 주변의 선술집 중에 느낌이 오는 곳을 찾아봤다. 한국 관광객들이 '국룰'이라고 정해둔, 그런 곳보다는 현지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인이 아무도 방문한 적이 없는 미개척지여서는 또 안 된다. 여러 개의 글로벌한 리뷰들 중에서 1~2개의 한국인의 리뷰가 존재하면서도 가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리 기준에 합격이면 됐다.
첫 번째 후보지로 향했다. 저녁 6시가 됐는데도 이제 막 오픈을 해서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우리가 첫 손님인 건 부담스러웠다. 적당히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다음 후보지로 걸음을 옮겼다. 영업 개시한 지 얼마 안 된 건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이미 가게 안은 이른 저녁부터 시원한 맥주가 땡겼던 일본인들로 적당히 북적거리고 있었다.
가게 문을 열려고 하자 벌써부터 술이 거나하게 취한 것 같은, 축구 유니폼 복장의 외국인 아저씨가 나왔다. 손님이 담배 태우러 나왔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이셨다. 덕업일치(?)의 사장님이라니, 여기로구나 싶었다. (실제로 그 사장님은 홀 가운데에 있는 오픈 형태의 주방에서 조리를 하면서 냉장고에서 스윽 기린이치방 캔맥주를 꺼내어 한모금씩 마시며 일을 하고 계셨다)
평소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지 주문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영어만 읽을 줄 안다면, 혹은 파파고만 있다면 충분했다. 메뉴판의 특정 음식이나 주류를 고르면 거기마다 구획명이 부여가 된다. 예를 들어 기본 안주 코너가 A이고 5번째 메뉴라면 A-5라고 종이에 적어서 종업원에게 주면 되는 식이다. 주문하는 재미(?)가 있었다. 너나 할 거 없이 키오스크를 도입하기에만 급급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오키나와의 현지 맥주는 오리온 맥주다. 짝꿍은 하이볼 비슷한 것을 주문했는데 자기 얼굴보다 잔이 나와서 두 손으로 마실 수밖에 없었다. 예의를 절로 갖추게 되는 크기였다.
둘이서 무사히 잘 도착했음을 경축하며 잔을 부딪혔다. 첫 모금을 시원하게 꿀떡꿀떡 넘기고 나니 '캬' 하는 감탄 소리와 함께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짧지만 굵은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본에 도착한 게 그제야 제대로 실감이 났다.
낯선 곳이지만 내 옆에는 누구보다 익숙한 짝이 있었다, 무거운 잔을 양손에 쥔 채로. 그 사실이 새삼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래도 혼자 여행보다는 같이 하는 게 좋고,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확실하다.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이 좋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그 나라만의 그 문화만의 고유성이 묻은 채로 사람 냄새를 풍기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는 계산을 할 때 금액을 정산하여 손으로 적어 그 종이를 조그마한 화폐용 접시(?)에 담아서 준다. 그럼 나도 거기에 지폐를 담아서 다시 건네어 주면 거스름 돈을 다시 거기에 담아서 돌려주신다. 일본은 현금 계산을 이런 식으로 하는 곳이 많다고 일본을 나보다 최근에 다녀온 짝꿍이 알려준다.
고작하루였지만 도조, 스미마셍, 아리가또를 꽤나 많이 들었다. 열두살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일본에 대한 작은 조각 중 하나가 그 특유의 예의와 격식이었다. 근데 그게 딱딱한 느낌보다는 따스한 느낌을 자아낸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22년만에 또 와보게 된 일본은 여전히 친절했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따뜻함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과하지 않고 의외로 적당하고 확실한 선이 있고 데면데면한 것이 우리나라의 정(情)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배려가 있는 사람이 좋은 우리 둘이기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일본에서의 첫날을 보냈다며자축의 잔을 연신 부딪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