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2030 청년들 사이에서는 공정이 화두다. 정유라 입시 비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조국 사태, 인국 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LH(한국 토지주택공사) 사태, 방탄소년단 병역특례 등의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청년들은 “이게 나라냐”라며 분노했다. 청년들의 분노는 곧 정치력으로 이어졌다. 70%대의 탄탄한 국정 수행 지지율을 얻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이 일면서 60%대로 하락했고,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후에 일어난 인국공 사태, LH 사태도 문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계기가 됐다.
공정 이슈는 급기야 정권마저 교체해버렸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청년들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정권교체에 앞장섰다. 그간 청년세대가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이대남’이라고 불리는 20대 남자는 윤석열 정부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선거 막판에 20대 여성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면서 0.73% 차이라는 최소 격차 대선을 만들긴 했지만 20대 여성이 이 후보를 지지한 건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보수정당의 반페미니즘 행보를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시사인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들이 이 후보를 뽑은 이유 2위와 4위는 ‘윤석열 당선을 막기 위해서(82.8%)’, ‘이준석 대표 등의 반페미니즘 행보에 반대해서(59.8%)’였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두 선택지에 각각 92.3%, 76.5%가 응답했다. 평균보다 높은 수치는 20대 여성이 보수정당의 반페미니즘 행보의 반대하기 위해 응집했음을 시사한다. 만약 보수정당이 반페미니즘을 이슈화하지 않았더라면 20대 대선 결과는 좀 더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하지 않아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공정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경북대학교 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아들과 딸에게 의대 편입 특혜를 준 의혹이 제기됐다. 또 BTS의 병역 특례도 도마 위에 올랐다. BTS를 포함한 대중문화예술인을 병역 특례 대상자로 넣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청년들은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 5명 중 1명(20.8%)은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990년 조사에서는 8.4%만이 위와 같이 응답했다. 30년 사이에 약 2.5배 늘어난 것이다. 세대가 거듭할수록 사회가 좋아져야 하건만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최근 공정을 주제로 지인들과 이야기하던 중 의문이 생겼다. ‘지금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은 정말 공정할까?’라는 의문이었다. 또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렸다. 세상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직도 빛 보지 못한 어느 소극단의 배우들은 막노동, 단기 알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꿈을 좇는다. 그러나 그들 중엔 국민배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씬스틸러 조연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과연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폐지 줍는 노인은 더우나 추우나 하루 종일 폐지를 주우러 길가에 나간다. 그렇게 주워 고작 몇천 원 받는다. 노인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루 일당 몇천 원을 받는 걸까?
인국공 사태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자 청년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누구는 인천공항에 입사하기 위해 밤새 공부하는데, 비정규직은 시험도 안 치르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에 분노했다. 그렇다면 시험이라는 기준은 과연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규직 전환 대상인 보안검색 요원들은 하루 12~14시간씩 근무한다. 12시간의 노력은 최저임금으로 계산되면서도 언제 어떻게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다. 시험만 노력이고 인천공항 승객의 안전을 위해 최저임금으로 계산된 12시간의 근무는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걸까?
황금만능주의에 이어 시험 만능주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도 시험이 기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에게 ‘PPAT(공직자후보자기초자격평가)’를 치르게 했다. 기초의회 출마자는 60점, 광역의회 출마자는 70점을 넘기지 못하면 공천에서 탈락한다. 이 대표는 시험을 통해 공직후보자들의 최소한의 자질을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과연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은 정치할 자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정치할 자격 요건이 아예 없는 걸까? 처음부터 시험에 응할 수 없는 청소년, 장애인은 어떤가?
일자리, 대학 정원 등 한정된 자원 속에서 시험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시험이 공정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 ‘시험=공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험을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될 수 없다거나, 청소년·장애인에게는 정치인이 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불공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시험=공정’이라는 오늘날의 공정 기준은 잘못됐다. 이는 어디까지나 시험을 핑계 삼아 남을 밟고 올라가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뿐이다. 시험은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누군가는 눈물을 쏟고, 누구는 그 눈물에 미소를 머금는다. 남의 불행에서 행복을 찾는 것을 공정이라고 규정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잘못됐다. 우리가 쫓아야 할 공정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글은 그런 공정 담론을 만들어보고자 쓴 글이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