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생 당대표 이성윤의 미래정책 3화] 선거에서 '최선'을 뽑는 방법
한국 선거제도의 가스라이팅
선거철이면 '선거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오래전부터 듣던 말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이 말을 들을 때면 늘 궁금했다. '선거에서 최선을, 하다못해 차선을 뽑을 수는 없을까?'
선거에서도 얼마든지 최선을 뽑을 수 있다. 유권자가 적극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투표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한국 선거제도는 유권자가 적극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투표하지 못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정당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 33.50%, 민주당 25.54%, 국민의당 26.74%, 정의당 7.23% 순이다(21대 총선은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얼룩져 20대 총선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각 정당이 차지한 의석수 비율은 새누리당 40.6%(122석), 민주당 41%(123석), 국민의당 12.6%(38석), 정의당 2%(6석)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정당득표율 대비 각각 7%p, 16%p 더 의석수 비율이 높았고,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각각 13%p, 5%p 낮았다. 특이한 점은 국민의당이 정당득표율에서 26.74%로 민주당 25.54%보다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차지한 의석은 38석으로 민주당의 1/4 수준이었다. 유권자는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정당에게 투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왔다.
심지어 대통령이나 시장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 20대 대선과 같은 초박빙의 선거에서 유권자가 적극 지지하는 후보의 지지율이 미미하면 유권자는 어쩔 수 없이 초박빙인 후보 가운데 한 명에게 투표한다. 그 결과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뽑는 선거가 탄생한다.
한국 선거제도는 유권자를 '가스라이팅'(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한다. 유권자가 적극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투표해 봤자 당선될 가능성이 없으니, 더 가능성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게 함으로써 최선에게 투표하지 못하게 하고 차악에 투표하게 만든다. 이 같은 선거제도가 오랜 기간 반복된 결과, 우리 뇌리에 '선거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내렸다.
차악 아닌 최선에게 투표하는 방법
모든 선거에서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될 순 없다. 그러나 모든 선거에서 최선에게 투표할 수는 있다. 선거제도만 바꾸면 말이다.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면 유권자는 마음 편히 자신이 가장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 과반을 넘긴 후보가 없어 2차 투표로 넘어갔는데, 내가 지지한 후보가 2위 안에 들지 않았다면 그때 다시 나의 최선에게 투표하면 된다. 지금처럼 나의 소신투표로 인해 최악의 후보가 당선될까 조마조마하면서 차악에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개방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하원은 지역구 의원 없이 전부 비례대표만을 뽑는다. 네덜란드 하원은 모두 150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당은 1/150인 0.67%만 획득하면 소속 후보가 당선된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순번으로 정해두고 유권자들은 선호하는 정당의 후보에게 투표한다. 예를 들어 A당 40%, B당 30%, C당 20%, D당 10%를 얻었다면 A당 60명, B당 45명, C당 30명, D당 15명씩 의원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나서 A당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사람 1~60번, B당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사람 1~45번 순으로 당선되는 선거제도다. 또 각 정당은 최소 0.67%만 득표하면 1석을 보장받기 때문에 유권자는 마음껏 자기가 가장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할 수 있다. 네덜란드 선거가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겠지만 아주 간단하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당선되며 최소 0.67%만 받아도 1석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26.74%의 정당득표율을 얻고도 실제로는 12.6%만 당선되는 불공정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처럼 지역구 의원을 모두 없애고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않고도, 우리나라에서 얼마든지 최선에게 투표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지난 21대 총선에서 도입하려다가 위성정당 사태를 맞이하며 실패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재 우리가 실시하고 있는 투표 방식을 고치지 않고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 배분이 가능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먼저 확보한 뒤 당선된 지역구 당선자를 채워 넣고 나머지를 비례 후보로 채워 넣는 선거제도다. 예를 들어 전체 300석 의석 가운데 A정당 50%, B정당 30%, C정당 20%씩 득표했다면 A정당 150석, B정당 90석, C정당 60석을 확보하게 된다. 그다음 A정당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120명 나왔다면 나머지 30명은 비례 후보에서 당선된다. 만약 C정당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없다면 60명은 모두 비례후보로 당선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난 20대 총선에 도입됐다면 정당득표율 26.74%와 7.23%를 얻은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고작 38석(12.6%), 6석(2%)만 가져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 유권자가 최선이 아닌 차악에 투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선거제도가 잘못세팅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결선투표제, 득표한 만큼 당선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유권자는 얼마든지 최선에게 투표할 수 있게 된다.
마침 그 기회가 오고 있다. 국회는 오는 4월 10일까지 내년에 있을 22대 총선 선거제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번만큼은 '선거는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대국민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유권자가 생각하는 '최선에게 투표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자.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 이성윤입니다. 미래당은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좀 더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7년 창당했고, 공동창당준비위원장과 1기 공동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서울시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으로 접어들면서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기성 정치인의 정치 문법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미래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기사 청탁, 섭외는 이메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